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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2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P. 70
새로운 삶을 사는 일은 새로운 언어를 획득하는 일과 유사한지. 그때 옛 언어를 쉬이 잊고 마는 것은 인간의 고질인지. 숲의 사람들은 본디 뱀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고, 흡사 휘파람 소리 같은 그 말로 동물과 소통했다.
어쩌면 진정 야만이라는 것은 그때부터 생겨난 것인지 모른다. 모두가 소통할 수 있던 시절에는 문명과 야만의 구분이 무의미했다. 그러나 먼저 인간이 뱀의 언어를 잃었고, 그러자 자연히 동물도 그것을 잊어버렸다. 그렇게 인간과 동물의 세계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후자는 불현듯 미개한 사나움으로 배제되었다. 그 배제에 힘입어 구축된 거룩한 세계 속에서 인간은 동물의 한 종이라는 제 정체마저 잊은 듯했다.
P. 73
그럼에도 인간은 육식을 포기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잔혹해졌듯. 여성처럼 동물도 사유 재산에 속하게 됐듯. 먹히건 먹히지 않건 탐욕의 도구가 됐듯, 비극이라는 것이 동물의 실제적 죽음을 인간의 허구적 고통으로 대체함으로써 시작됐다면 이는 긍정적인 전환일 것이나. 그 이면에서 살상이 멈춘 것은 아니며, 도리어 무대에서 사라짐으로써 동물의 고통은 더 이상 가시화되지 않는 곳으로 밀려났다.
P. 74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전해지고, 눈물을 쏟아 감정을 해소한 뒤 극장을 나서 다시 생의 쳇바퀴에 올라타도록 만들어진 장치. 변질된 축제. 그것은 세계가 해소될 수 없는 혼돈과 비참과 모순으로 채워짐을 은폐하고. 이미 질서 속에 편입된 아픔은 세계를 뿌리째 뒤흔들 만큼 강렬하지 않고. 그렇게 이천오백 년이 흘러, 이제 다시 질서 바깥에서 돌아오는 것들이 우리를 건드릴 차례. 비로소 만져지는 비극.
P. 84
끔찍한 고통은 몸에 각인되므로 쫓으려 해도 영원히 돌연한 소스라침으로 우리를 깨우는 반면,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은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끝내 잊히고 만다. 나는 삶으로부터 그것을 배웠고 그리하여 되도록 많은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
P. 88
극장은 여성의 죽음을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적 장소였다. 여전히 남성 배우들이 연기했을지언정, 고귀한 여성 인물들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이 맞이하는 비극에 관객은 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개 그 죽음은 불명예스러웠다. 운명과 싸우다 스스로 검에 찔리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오직 남성의 영예를 위해 리본을 모아 끈을 만들어 목을 맸다. 그마저도 무대 위에서 가시화되지 않았으며, 전령에 의해 전해지는 문장 속으로 그 죽음은 엄폐되었다.
P. 100
법이란 위선적인 인간들의 저열한 거짓됨을 만족시키기 위한 폭력의 도구다. 그리고 그 폭력으로 인해 지워졌던 것들이 때로 돌아와, 폭발적 난입으로써 저 위선을 고발한다.
P. 101
지구의 그늘진 곳마다 오늘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죽음들이 쌓이고 쌓여간다. 그러므로 저 테러의 죽음에 진심으로 고통과 비탄을 느끼기 위해서는, 단지 테러리스트의 야만적 소행으로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모든 허망한 권력의 흐름 속에서 스러져간 목숨들을 절절히 감각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