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2026.04.13
이청준 단편 <꽃과 소리>
- 연극이란 너무 현실을 닮아도 좋지가 않는 것 같더군요. 줄거리 중에 가짜 꽃이 너무 진짜를 닮아 그것을 거꾸로 압도해버리니까 혼란이 야기되고 엉뚱한 화를 빚어내고 오히려 그 문명 자체가 복수를 당하듯 말입니다.
- 아까 연극은 어차피 현실 자체는 아니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물론 지금까지 모든 연극에서는 그 말이 맞아요. 작가가 현실을 관찰하고 거기서 본질적인 질서를 추출하고, 또 의미를 부여하여 작가가 의도하는 새로운 무대 현실을 창조해 보임으로써 관객을 그 작가로부터 해석된 무대 현실을 구경하고 전달 받기만 하면 되었지요. 하지만 전 자신이 없었어요. 현실에 대한 해석이나 의미 부여에 앞서 그 현실 자체를 정직하게 볼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관찰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제가 그것과 만나는 순간에 이미 저의 의식 속으로 침투해 들어와 있거나 영향을 주고 있어서 그 실체가 저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관찰되기를 거부해버리기 때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