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019.07.06
무라카미 류 <자살보다 SEX>
p.31
제도를 바보 취급해선 안 된다. 제도는 강력하다. 이 세상 일 중에 거의 대부분이, 100%에 가까운 비율로 제도를 지지하고 보완하는 장치로서 존재한다. 제도에 대항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p.57
인격이란 사회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 점을 생각해보면, "남편에 대해 전부 봐버렸다" 라는 말은 다른 뉘앙스를 띠게 된다. 원래 사람이 전부 보인다' 라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아마도 이 말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본시 통일된 인격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인간이 속과 다른 부분이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 앞에서는 통일된 인간이기를 바라며 또한 그렇다고 믿는다. 통일된 인간이 아니면 자신을 확인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서 파생되는 또 하나의 공포가 있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공포, `이 사람은 나 말고 다른 사람 앞에서도 내 앞에서와 똑같이 행동하겠지' 라는 상상이다. 그것을 질투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는 질투를 지워버릴 수 없다.
p.103
상처에는 기준이 없다. 얼마만큼 가했을 때 어느 정도의 상처가 남는지 일반화해서 잴 수 없다. 상처를 자신을 팔아먹는 데 이용해서는 안 된다. '상처' 가 '상품'이 되고, 상처의 치유도 상품이 된다. 모두 있지도 않은 상처를 찾아내어, 상처에 기대어 의지를 포기하며 정체성을 찾는 그런 환상을 요구한다.
p.118
과로사에 대해 생각해본다. 과로사라는 말은 언제부터 나오기 시작했을까? 내가 어릴 적에는 없었다. 당시 어른들은 지금과 같거나 그 이상으로 일했다. 모든 조건이 열악했지만 스트레스로 죽었다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은 스트레스 사망자가 왜 그리 많을까? 답은 간단하다. 일하는 보람이 없어서이다. 필사적으로 일을 해도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는다.
왜 칭찬받지 못하는 것일까? 산업계에서 필사적으로 일을 해보아도 이제는 국가적인 목표가 없어졌음을 누구나 말 안해도 은연중 깨달았다. 사람들은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흥미를 가지는 대신, 그저 취미를 가지자, 여가를 충실히 즐기자, 여유를 갖고 살자 라는 표어의 노예가 되는 것을 택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가 따위 속에 충실함이 들어 있을 턱이 없다.
p. 121
평범한 사람들은 내 소설을 읽지 않는다. 내 소설이 인기 없어서 한탄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누구의 것이든 간에 소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상형으로 삼는 남자도 없고, 언젠가 한번은 꼭 가보고 싶다고 눈여겨둔 레스토랑도, 외국도, 차도, 아무것도 꿈꾸지 않는다. 아니, 원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정말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들은 세분화된 기호에 맞춘 정보를 받아서, 그저 편안하고 기분 좋은 생활을 바랄 뿐이다. 카탈로그 잡지를 사서 읽긴 하지만, 신용하지는 않는다. 텔레비전을 자주 보지만 바보 취급을 한다. 유명인을 좋아하지만, 자신이 유명해지고 싶어 애타지는 않는다. 그녀들을 만나면서 나는 `문학의 위기' 를 느꼈다.
p.122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젊은 건 멋진거야!' 라는 바보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댈 것이다. 지금 사회는 노인이 지배하고 있으나 (내내 노인이 지배해왔다) 이 연배들은 앞으로 10~15년 정도면 세상을 떠나니까. 그들은 자신이 사라진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대로 세상이 쭉 이어지기를 바라며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어느 한 구석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소수가 있어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소수 쪽이 시끄럽게 아우성치면 달래는 척만 한다. 그런 노인들 밑에서, 그런 노인이 되고 싶어 라는 아저씨들이 매스컴 현장에서 일하거나 아침까지 카메라 앞에서 떠들거나 한다.
가장 치명적인 점은 그들 모두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무엇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한다. 거기서 일을 하며 돈 번다는 것 외에는 다른 나라에도 흥미가 없다.
p.153
TV 는 여러 의미에서 경이적인 미디어다. 우선 수많은 사람이 함께 유사 체험을 가지는 일은 그때까지 없었다. 또한 가족 전원이 수동적이 되는 체험도 그때까지는 없는 일이었다.
p.155
불안이란 앞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실제로 노숙자로 전락해버리면 앞으로 노숙자가 되면 어쩌지, 라는 불안으로부터 해방된다. 옴진리교 신자들은 믿을 수 없을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이해할 수 없는 수업을 반복하지만, 불안은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전적으로 믿어버리면 불안은 없어진다. 즉, 불안이 없는 사회란 가난하든지 자유가 없든지, 혹은 그 양쪽 모두가 다 갖춰져 있는 사회이다.
불안이 없는 사람은 위기감을 가질 수 없다. 위기감은 호기심과 결합되어 그 개인으로서는 가끔 중요한 행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