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2026.06.07
너한테 동류 의식을 느낀다
foggyyy라는 닉네임으로 처음 만났던 태호, 내 백문백답 블로그 양식을 그대로 가져온 답변에서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그 다음에는 닉네임으로, 우리는 점차 상대의 정체를 파악해갔다.
예전에도 써놓았지만, 그는 마치 인생의 어느 부분을 건너뛴 것 같았다. 그리고 약간 썰렁한 농담을 많이 했으며 술잔마다 고뇌를 가득 담아 들이켰다. 처음에는 마치 유리를 세공하듯 한 단어, 한 글자, 한 문장 세심하게 골라서 말하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보따리 째로 풀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많았다.
언제나 숙면이 과제인 나로서는 무기력이 익숙하다. 무기력은 어떤 고통이 극에 달해서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시시각각 괴롭히는 온갖 잡념에 잠식당한 채, 필사적으로 텍스트에 매달려 무언가를 끄적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이 세계의 모든 일에 의미를 갖다 붙여서 내 것으로 만들려는, 한마디로 심원한 것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이 사회에 어느 정도 양립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느낀다. 부조리하고, 추하고, 이해 불능의 것들로 가득 차있다. 크고 작은 말다툼부터 시작하여 경쟁, 환경 파괴, 기아, 강간, 전쟁, 살육, 경제적 불평등, 무관심에 대해 때로는 경멸감을, 때로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다. (이런 걸 비판해서 뭣할까, 마치 사슴을 잡아먹는 호랑이에게 정의를 말하는 꼴이니)
문득 헤르만 헤세가 <황야의 이리>에서 말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실 세상이 옳다면, 다시 말해 카페의 음악이나 대중의 향락이나 값싼 만족에 길들여진 이런 미국식 인간들이 옳다면, 내가 틀렸고, 내가 미친 것이다."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하는 것, 그런 상황 속에서 형상의 근원을 찾는 것, 모든 사건 사고에 겹겹이 덧씌워진 의미를 포착할 때 느끼는 고양감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정신적 풍요를 주며, 그러한 영감이 곧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사실 이 감각을 말과 글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애초에 분리된 두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 만큼의 거리감이 있고, 서로 내부에 끝까지 닿을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교집합으로서 특정 시점에 일어나는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비록 백일몽에 불과할진 몰라도, 나는 태호가 나와 비슷한 감각을 갖고 있으리라 믿고 싶은 것이다.
오늘도 웃으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