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2026.03.24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문명이라는 얇은 껍질이 벗겨졌을 때 인간은 무엇이 되는가?
비행기로 후송된 영국 소년들이 태평양의 어느 무인도에 불시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어른들이 부재한 환경에서 아이들(랠프, 잭, 퍼시벌, 그리고 돼지 - 본명은 끝까지 안나옴) 고립된 장치를 통해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잘 드러냈다. 죽은 군인을 괴물로 착각하고 광기를 일으키는 아이들, 그것이 괴물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리려다 살해된 사이먼, 섬에 불을 지르는 잭 무리가 딱 사회의 압축판이었다.
사람들은 거짓 때문에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진실보다 더 신뢰하는 데에서 오는 인지부조화 때문에, 그것에 대한 반감으로 폭력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소문 하나가 사실보다 빨리 퍼지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을수록 집단의 결속력은 강해진다 (반면 사이먼처럼 배척당할 수도 있다)
잭 부족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단지 사냥을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점점 얼굴에 분장을 하고 의식을 만들고 적을 설정하면서 폭력 자체를 즐기는 집단으로 변한다. 권력은 공포를 먹고 자라고, 공포는 다시 더 큰 권력을 낳는 셈인데, 독재나 전체주의가 형성되는 과정과도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어른은 아이보다 더 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더 거대한 규모의 폭력을 행사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씁쓸한 역설적 교훈도 느껴졌다. 문명은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폭력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잡아먹지 않도록 유지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법과 제도, 규범, 도덕이 필요한 것이다.
짐승을 죽여라! 목을 따라! 피를 흘려라!
WELCOME TO THE KILLINGFIE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