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2026.06.27
이번 축구 패배에 대한 단상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축구를 봤었더라? 아마도 남아공 월드컵, 그러니까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남자애들의 권유로 같이 축구도 했었지만 기본적으로 스포츠 경기 그 자체에는 관심이 안 간다. 다만 이번 경기는 회사에서 얼떨결에 같이 보게 되었는데 실망스럽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한국은 전반전보다는 후반전에 강하다는 말이 있다. 불과 한 세기만에 식민지에서 선진국이 된 전례없던 역사적 저력의 영향으로 경쟁심과 승부욕이 강하고, 특유의 오기와 인내심으로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러한 민족성이 한 순간에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경기에도 나름대로 반전을 기대했지만 미적지근하게 끝났다. 어느 정도였냐면, 하이라이트도 마땅히 보여줄 부분이 없어서 골키퍼가 골을 두 번 연속으로 막아내는 장면만 몇 초 방영되고 끝난 정도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무방비 상태에서 각도 조절에 실패한 남아공도 아직 갈 길이 멀더만, 그런 선수들 앞에서 패배라니. 나름대로 짜릿한 역전승의 쾌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전반전이 끝날 무렵부터 흥미가 시들해져서 그냥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애초에 한국과 남아공이 실력이 비등한 국가가 아니었음에도 영향력 있는 선수를 제외한 것이나 득점할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 그 모든 것이 결국 전술의 문제였고 그게 남아공과의 경기의 패인 아니었던가?
난 솔직히 축구도 애들 장난이고, 축구에서 이기고 지는 건 전 국가적으로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 딱 한 가지 이유밖에 없는데, 그것은 축구로부터 전략적 매커니즘을 파악하여 철학적 원리를 확립하는 것이다.
대항전에서의 승패 여부 자체는 정말 중요한 게 아니다. 브라질이 축구를 잘 한다고 해서 GDP가 높은가? 선진국 반열에 들었나? 정치적, 경제적 수준과는 별개로 축구팀이 세계 최강이라는 건 존중 받아야 마땅한 사실이나, 딱 거기에서 그친다. 월드컵에서 1위를 하든 피파 랭킹이 올라가든 개뿔 소뿔도 의미 없으며 그냥 국뽕에 취하기 딱 좋을 뿐이다.
축구에서 의미있는 건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다윗과 골리앗 스토리의 교훈이 어느 누구에게도 무한하게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팀간 끈끈한 유대 의식, 경기 내내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열정과 투혼, 그로 인한 추월과 역전승은 일상에서 쉽게 맛보기 힘든 감동과 희열을 선사한다.
아무리 상대팀이 강자고 불리한 위치에 있더라도 치열하게, 사즉생 생즉사 급으로 노력하면 결국 기적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뜻깊은 것이다. 난 이것이 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서도 느낄 수 있는 교훈이며, 이것이 전 인류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라고 느낀다.
또 한국의 스포츠 문화는 지나치게 엘리트 육성 중심이다. 성적과 결과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자기 종목에만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운동 외에는 역량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일본을 롤모델삼아 클럽 중심으로 유소년 축구단을 육성하고 지도자와 감독, 운영팀 교육을 하고 데이터를 분석하여 전술을 짜는 식으로 벤치마킹은커녕 어설프게 흉내내기까지도 한참 멀었다는 걸 느낀다.
축구를 아예 모르는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투지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감독은 전술은커녕 전략조차 구사하지 않았다고 하니 엉성하고 무능하다는 비판은 합리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