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019.10.27
이광수 <무정>
- 사오 년 동안 날마다 다니던 교동으로 내려올 때 형식은 놀랐다.
길과 집과 그 집에 벌여놓은 것과 그 길로 다니는 사람들과 전신대와 우뚝 선 우편통이 여전하건마는 형식은 그것들 속에서 전에 보지 못한 빛을 보고 내를 맡았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그것들이 새로운 빛과 새로운 뜻을 가진 것 같다. 길가는 사람은 다만 길 가는 사람이 아니요, 그 속에 무슨 알지 못할 것이 품긴 듯하며 두부 장사의 `두부나 비지드렁 사료' 하고 외우는 소리에는 두부와 비지를 사라는 뜻 밖에 더 깊은 의미가 있는 듯하였다.
형식은 자기의 눈에서 껍질 하나가 벗겨졌거니 하였다. 그러나 이는 눈에서 껍질이 벗겨진 것이 아니요 기실은 감고 오던 눈 하나가 새로 뜬 것이로다. 아까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화상을 볼 때에 다만 그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지 아니하고 그 속에 새로운 뜻을 발견하게 된 것이 눈이 떠지는 첨이요, 선형과 순애라는 두 젊은 계집을 볼 때에 다만 두 계집으로만 보이지 않고 그것이 우주와 인생의 알 수 없는
힘의 표현으로 본 것이 이 눈이 떠지는 둘째요, 지금 교동 거리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전에 보고 맡지 못하던 새 빛과 새 내를 발견함이 그 셋째라.
그러나 그는 이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름 지을 줄 모르고 다만 `이상하다' 하는 생각과 희미란 기쁨을 깨달을 뿐이라.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았노라면 모든 것에 강한 색채가 있고 깊은 뜻이 있다. 형식은 `내가 지금까지 인생과 서적을 뜻을 모르고 보았구나' 하였다.
- 형식은 이제야 그 속에 있는 사람' 이 눈을 떴다. 그 속눈' 으로 만물의 속뜻' 을 보게 되었다. 형식의 속사람은 이제야 해방되었다. 마치 솔씨 속의 솔의 움이 오랫동안 숨어있다가 봄철 따뜻한 기운을 받아 굳센 힘으로 나솟아 장치 줄기가 되고 가지가 나고 잎과 꽃이 피게 됨과 같이 형식이라는 한 사람' 의 씨가 되는 `속사람' 은 이제야 그 껍질을 깨뜨리고 넓은 세상에 우뚝 솟아 햇빛을 받고 이슬을 받아 한없이 생장하게 되었다.
+ 새는 알을 깨고 나와 비상하듯, 비상하기 위해서는 껍질을 깨뜨리고 나와야 한다.
- 무궁한 시간의 일 점과 무궁한 공간의 일점을 점령한 인생에게 큰일이라면 얼마나 크고 괴로우랴.
여러분에게 천문학자가 되라고 권하지 아니하거니와 밤마다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기는 간절히 권하오.
- 더러운 집에서 성장한 사람이 자기의 집이 더러운 줄 모르다가도 한번 깨끗한 집을 본 뒤에는 자기의 집이 더러운 줄 깨닫는 모양으로
노파는 일생에 깨끗한 영혼과 참사람을 보지 못하다가 따끈한 영채의 피에 오십여 년 죄악에 묻혀 자던 깨끗한 영혼이 놀라 눈을 떠서
백설과 같고 수정과 같은 영채의 영혼을 보고 그를 보던 눈으로 자기의 영혼을 본 것이라.
그러다가 영감쟁이의 `사람' 을 보니 비로소 더러운 줄을 깨달은 것이라. 그러나 아침에 영채가 분을 바르고 향수를 뿌리고 웃으며 들어오는 양을 보매 노파 영혼의 눈을 다시 감기어 어제 저녁에 보던 영채의 속사람을 보지 못하고 다만 영채의 육만 보았을 뿐이다.
- 자기가 지금껏 ;옳다' 그르다' 슬프다' 기쁘다' 하여온 것은 결코 자기의 지(知)의 판단과 정(情)의 감동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온전히 전습을 따라, 사회의 관습을 따라 하여온 것이었다. 예로부터 옮다 하니 자기도 옮다 하였고, 남들이 좋다 하니 자기도 좋다 하였다. 다만 그뿐이로다. 그러나 예로부터 옳다 한 것이 자기에게 무슨 힘이 있으며 남들이 좋다 하는 것이 자기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내게는 내 지(知) 가 있고 내 의지(意志) 가 있다. 자기는 이제야 자기의 생명을 깨달았다. 자기가 있는 줄을 깨달았다. 자기는 다른 아무러한 사람과도 꼭 같지 아니한 지와 의지와 위치와 사명과 색채가 있음을 깨달았다.
- 형식은 무덤을 보고 슬퍼하지는 아니하였다. 형식은 무슨 일으로 보고 슬퍼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즐거웠다. 형식은 죽은 자를 생각하고 슬퍼하기보다 산 자를 보고 즐거워함이 옮다 하였다. 그 무덤 밑에 있는 불쌍한 은인의 썩다 남은 뼈를 생각하고 슬퍼하기보다, 썩어지는 살을 먹고 자란 무덤 위 꽃을 보고 즐거워하리라 하였다.
- 문명이라 하면 과학, 철학, 종교, 예술, 정치, 경제, 산업, 사회 제도 등을 총칭하는 것이라. 서양의 문명을 이해(理解) 한다 함은 위에 말한 내용을 이해한다는 뜻이니 김장로는 무엇으로 서양을 알았노라 하는고. 서양 선교사들은 이러함을 안다. 그러므로 그네는 김장로를 서양을 흉내내는 사람이라 한다. 이는 결코 김장로를 비방하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김장로의 참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서양 사람의 문명의 내용은 모르면서 서양 옷을 입고 서양식 집을 짓고 서양식 풍속을 따름을 흉내가 아니라면 무엇이라 하리오. 김장로가 아무리 천질이 명민하다 한들 책 한 권 아니 보고 무슨 재주에 복잡한 신문명의 참뜻을 깨달으리오. 안다는 것보다 믿는다 함이 적당하겠다.
- 자기가 생각하지 못하던 바를 생각함은 낡은 사람이 보기에 이단 같지마는 기실 낡은 사람들이 모르던 새 진리를 안 것이라.
아들은 매양 아버지보다 나아야 하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진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을 것이라.
낡은 사람은 새 사람이 자기 아는 이상 알기를 싫어하는 법이니 신구 사상 충돌의 비극은 그 책임이 흔히 낡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라.
- 형식이나 선형이가 피차 성질을 모를 것은 물론이다. 형식이 선형을 사랑하는 것도 다만 아름다운 꽃을 사랑함과 같은 사랑이다. 보기에 사랑스러우니 사랑하는 것이다. 극히 껍데기 사랑이다. 눈과 눈의 사랑이요 얼굴과 얼굴의 사랑이다. 피차의 정신은 아직 한번도 조금도 마주 접하여본 적이 없었다. 형식과 선형은 서로를 바라보며 저 사람의 속이 어떠한가' 할 터이다. 그리고 저 사람의 속이야 지내보아야 알지' 할 터이다.
다만 김장로 양주와 한목사만 이 두 사람의 속을 잘 알거니 한다. 물론 이 두 사람이 피차에 아는 것만큼도 모르건마는 그래도 자기네는 이 두 사람의 속을 잘 알거니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부부 된 뒤 행복해질 것은 확실하거니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을 마주 붙인다. 다만 자기네 생각에 그 미련하게 얕은 생각에 좋을 듯하게 보이므로 마주 붙인다. 그러다 만일 이 부부가 불행하게 되면 그네는 자기네 책임이라 하지 않고 두 사람의 책임 혹은 팔자라, 하나님의 뜻이라 할 것이다. 이 모양으로 하루에도 몇천 켤레 부부가 생기는 것이다.
- 마치 누에가 집을 짓고 그 속에 들었던 모양으로 영채도 알 수 없는 정절이라는 집을 짓고 그 속을 자기 세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 사건에 그 집이 다 깨어지고 영채는 비로소 넓은 세상에 뛰어나왔다. 자기가 지금껏 유일한 세상으로 알아오던 세상이 기실 보잘 것 없는 허깨비에 지나지 못하는 것과 인생에는 자유롭고 즐거운 넓은 세상이 있는 것을 깨닫고, 이에 비로소 영채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젊은 사람이 되고 어여쁜 여자가 된 것이라.
- 영채의 가슴에는 이제야 사람의 피가 끓기 시작하고 사람의 정이 타기를 시작한다. 영채는 자기의 마음이 전혀 변하여진 것을 생각한다. 어둡고 좁은 옥 속에서 지내다 처음 햇빛 있고 바람 불고 꽃 피고 새 우는 세상에 나온 것 같다.
- 현대의 문명은 소리의 문명이다. 그러나 불쌍하다. 서울 장안에 사는 삼십여 만 흰옷 입은 사람들은 이 소리의 뜻을 모른다. 또 이 소리와는 상관이 없다. 그네는 이 소리를 들을 줄 알고, 듣고 기뻐할 줄 알고, 마침내 제 손으로 이 소리를 내도록 되어야 한다. 저 플랫폼에 분주히 왔다갔다 하는 사람 중 몇 사람이나 이 분주한 뜻을 아는지. 왜 전등이 저렇게 많이 켜지며, 왜 전보 기계와 전화 기계가 저렇게 불분주야하고 때깍거리며, 왜 흉물스러운 기차와 전차가 주야로 달아나는지. 이 뜻을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 정신적 융합은 인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외모의 사랑은 얕다. 그러므로 얼른 식는다. 정신의 사랑은 깊다. 그러므로 오래간다. 그러나 외모만 사랑하는 사랑은 동물의 사랑이요 정신만 사랑하는 사랑은 귀신의 사랑이다. 육체와 정신이 한데 합한 사랑이라야 마치 우주와 같이 넓고 바다와 같이 깊고 봄날과 같이 조화가 무궁한 사랑이 된다.
- 형식은 생각한다.
나는 조선의 나갈 길을 분명히 알았거니 하였다. 조산 사람의 품을 이상과 따라서 교육자의 가질 이상을 확실히 잡았더니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필경은 어린애의 생각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조선의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모른다. 조선의 과거를 알려면 우선 역사 보는 안식을 길러 자세히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조선의 현재를 알려면 우선 현대 문명을 이해하고 세계의 대세를 살펴서 사회와 문명을 이해할 만한 안식을 기른 뒤 현재 상태를 연구해야 한다. 조선의 나갈 방향을 알려면 그 과거와 현재를 충분히 이해한 뒤에야 할 것이다
옳다, 내가 지금껏 생각해오던 바, 주장해오던 바는 모두 다 어린애의 어린 수작이다.
더구나 나는 인생을 모른다.
내게 무슨 인생의 지식이 있는가.
혹 알지 못한다 하여도, 적더라도 현재 내가 세상에 처하여갈 인생관은 있어야 할 것이다. 옳은 것을 옳다 하고 좋은 것을 좋다고 할 만한 표준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게 그것이 있는가. 나는 과연 자각한 사람인가. 조상 적부터 전하여오는 사상의 계통은 다 잃어버리고 혼돈한 외국 사상 속에서 자기네에게 적당하다 생각하는 바를 택할 줄 몰라 어쩔 줄 모르는 방황하는 오라비와 누이가 자기와 선형의 모양인 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