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9.06.29
미야베 미유키 <용은 잠들다>
꽂히는 구절 모음
p.66
"말하자면 나는 수신기야. 커다란 수신기. 그러니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은 스위치를 만드는 일이지. 필요에 따라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것. 정신을 집중하면 그게 가능해. 이해가 돼?"
p. 68
"과거의 경험이라는 비교 대상이 없다면 애장초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뇌에는 `지금 현재' 란 시간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 걸 어디서 배웠지?"
" 배우지 않았어요. 아무도 정통 학문으로 취급해 주지 않는걸. 책을 몇 권 읽긴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 내가 스스로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마음을 읽는다는 건 기억을 읽는 거지.
p. 72
현실과 비현실, 합리와 불합리는 아주 잘 어우러진 형태로 공존한다. 영원히 교차할 일 없는 철길과도 같다. 우리는 그 양쪽에 바퀴를 얹고 달리고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현실적이어야 할 정치가가 무당에게 점을 보거나, 현실을 초월해야 할 종교자가 세금을 안 내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인텔리전트 빌딩을 지으면서도 심각한 얼굴로 고사를 지낸다. 합리의 레일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면 냉혈한이 되고, 불합리의 레일로 기울어지면 광신도가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어느 지점에서인가 탈선하게 되어 있다.
p. 119
끊임없이 밀려오는 진심, 진심의 홍수. 거기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능력을 컨트롤해야 할 뿐 아니라, 자기 감정까지 자제해야 한다. 속된 말로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이가 말이나 태도로 표현하지 않는 한 주위 사람들의 진심을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문제가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
p. 146
내 소절을 제대로 부르려고 애써도 금방 옆 사람 노래를 부르게 되는 꼴이야. 아, 이러면 안 된다 싶어 다시 내 노래를 하려고 노력하지. 그렇지만 조금 지나면 또 남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는 거야. 그런 것과 마찬가지지. 자신이 없어진다고 해야 할까.. 심한 경우에는 내가 사러 간 것이 뭔지도 까먹고 다른 사람이 사고 싶어하는 걸 사오기도 해.
p. 185
이코마 곁에 서서 컴퓨터 본체 옆에 놓인 작은 모뎀의 녹색 램프가 깜빡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원리나 구조를 모른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시스템 센터에 연락해 와달라고 할 뿐이다. 그야말로 블랙박스다.
만약 초능력이 존재한다면, 인간이 갖고 있는 블랙박스이고, 그것에 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그 초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뿐일지도 모른다.컴퓨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 컴퓨터의 성능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감밖에 갖추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초능력이란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P. 203
"저울이 흔들리는 동안에는 눈금을 읽을 수 없는 법이죠."
P. 238
" 너 말이야, 지금 여기 네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에 의미를 못 느껴? 네가 그냥 어느 누군가의 자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야? 자손을 남기지 않으면 네 존재 의식이 없어져? 사람들이 다들 그런 생각을 한다면 동굴에 벽화를 그리던 시절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 거야."
P. 274
혜택을 받는다. 아니,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형태건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살기 편하게 해주지 않고서야 문명국이라고 할 수 없다. 사고나 병이 아니더라도, 그냥 나이를 먹어가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약해진다.
살아가는 데는 여러 도움이 필요하다. 전기 장치로 달걀 거품을 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왜 절실하게 편리함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에 그 기술을 사용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일까. 뭐든 스스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편안하고 게으르게 살기 위한 도구만 만들어내는 주제에, 기계나 동력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참아라, 강해져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P. 327
나는 원석을 보는 거야, 하고 신지가 말을 이었다. "마음속에 잔뜩 숨겨져 있는 원석 말이야. 그 사람의 마음을 이루고 있는 원석. 그것만으로는 완전하지 않지. 그 사람이 그것을 꺼내 갈고닦지 않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