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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7
데이비드 미첼 <유령이 쓴 책>
p.25
불변성을 지닌 인간의 영혼을 체계적으로 도살하는 것이 현대 세계에서 벌어지는 진짜 잔인한 짓임을 사람들은 모른단 말인가? 왜 사람들은 비옥함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단순한 정치인, 뇌물을 받고 뒤통수를 치는 은밀한 거래나 하는 바퀴벌레, 자신이 빠져 발버둥치는 똥구덩이에 대해 아무 생각조차 못 하는 영혼. 어떻게 저런 깨끗하지 못한 하급인들이 감히 우연을 지배하는 분께 뭔가를 강요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p.28
공동체는 사교도가 아니다. 사교도는 노예를 만들지만 공동체는 해방시킨다. 사교도의 지도자는 뱀 혀가 달린 사기꾼이며 무대 뒤에는 창녀들이 소속된 전용 하렘과 롤스로이스 선단들이 있다.
p. 51
내 마지막 방어벽은 평범함이었다. 평범함이 사라졌을 때, 내게는 목소리에 실리는 알파파 포텐셜 말고는 나를 보호할 아무런 장치도 없었다.
p. 65
사람들은 자신이 함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잡동사니가 되거나 동굴 속 개미가 되고 만다.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깨닫고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격리하기 위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도쿄에서는 불가능하다. 도쿄에서는 회장, 갱, 정치인, 황제가 아닌 이상 절대로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수 없다. 지하철에서는 몸과 몸을 부대껴야 하고, 버스에서는 손잡이 하나를 여럿이 나눠써야 한다. 아파트 창문으로는 다른 아파트 창문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도쿄에서는 자기 머릿속에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이런 공간을 만든다. 땀, 운동, 고통도 한 방법이다.
p. 72
잡지에서 나온듯한 아이들은 진실한 면이 하나도 없다. 잡지에서 배운 표정을 짓고, 잡지에서 배운 말을 하고, 잡지에 나온 장신구를 달고 다닌다. 이 아이들은 이렇게 되기를 선택했다. 이 아이들을 비난해야 할지 말지 모르겠다. 상처 입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라! 잡지처럼 얇고 번들거리는 일회용 인간들을.
p. 74
나처럼 주변과 다르고 별난 존재는 이곳에서는 죄인이나 마찬가지다.
p.75
도시는 거대하지만 누군가를 알고 있는 누군가는 언제나 존재한다. 익명은 우연을 감싸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우연을 더욱 눈에 띄게 만들 뿐이다.
p. 102
나무에 달려 있는 동안 벚꽃은 계속 완벽해지지. 그리고 마침내 완벽해지면 지는 거야. 벚꽃이 땅에 떨어지면 완전히 짓뭉개지지. 그러니 벚꽃이 지면서 이리저리 흩날릴 때만 아주 잠깐 가장 완벽한 거야...
p.135
사람에게 물고기를 조면 그 사람에게 하루 먹을 걸 준 거란다. 하지만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먹을 걸 주는 거지.
p.136
그 계집애의 출현은 냉장고 소음 같았다.
듣기도 전에 익숙해져 버리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