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2021.01.18
베르나르 베르베르 <뇌>
1. 과학자들이 꿈꾸는 능력을 지닌 컴퓨터를 발명하지 않는 한, 인간은 언제나 기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겁니다.
2. 달리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단지 꿈꾸는 능력만이 인간 정신의 특징을 이루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광기의 능력 역시 인간 정신의 한 특징이 아닐까요? 광기, 아니 어리석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컴퓨터가 우리 인간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바로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능력입니다. 아테나가 말하더군요. 컴퓨터들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우쭐대는 한 결코 인간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테나는 이제 인공 지능이 아니라 <인공의 어리석음>을 창조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나는 이런 미래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들이 인간에 의해 미리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자기들 나름의 의식뿐만 아니라, 기분이나 컴퓨터 특유의 감수성까지 갖추게 될 가능성이요.
3. 바야흐로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상상의 세계에서 나온 단순한 생각 하나가 원지 폭탄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윤리와 도덕은 더 이상 없고 그냥 실험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세상에서 누가 감히 <인간화한 뇌> 를 가진 생쥐들의 법적 지위를 논할 수 있으랴?
우리는 아주 강력하다. 우리 행위가 가져올 결과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깨달음이 필요할 것이다.우리는 이런 행위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4. 똑똑하다는 건 때로 우리의 약점이 된다. 자동차 엔진의 성능을 지나치게 강화하면 아무리 뛰어난 카 레이서도 자기 뜻대로 차를 몰아갈 수 없다. 엔진의 회전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사고도 늘어난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똑똑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자꾸 나아가는 것을 멈추고 우리의 현상을 점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 능력의 비약적 발전을 포기하고 나아간다는 것의 참뜻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니 매우 우상 파괴적인 생각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바야흐로 우리의 <지능> 을 기계에 전달하려 하고 있다. 그건 어쩌면 우리 손을 데게 하는 뜨거운 감자를 떠넘기는 것과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혹시 그것을 관리할 줄 모르기 때문에 떠넘겨 버리는 게 아닐까?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5. 핀처가 이런 말을 했어요. 광기란 우리의 머릿속에서 자라난 난폭한 용이다. 우리는 그 괴물을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그것을 죽이기보다는 말이나 낙타처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면 그 용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먼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것이다.
6. 인간의 영혼을 다루고자 하는 권능이 고해 신부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나 정신 분석가에게 맡겨져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나 정신 분석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저 환자들을 죄의식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옳은 쪽은 환자들입니다. 모든 게 사회 탓, 부모 탓, 친구 탓이죠. 사람들은 즉각적인 쾌락을 좇습니다. 그것이 야기하는 해악에는 아랑곳하지 않아요. 그러고 나서는 정신과 의사나 정신 분석가를 찾아갑니다. 자기들이 올바르게 행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러 가는 거죠.
7. 우리는 누구나 가장 원초적인 충동에 무조건 굴복하지 않도록 교육을 받았어요. 에피쿠로스주의자 클럽의 추종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요. 우리 사회에 전혀 도움이 될 게 없는 일입니다. 정작 에피쿠로스 자신은 작고 소박한 즐거움을 예찬하고 올바른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권장했는데, 그 가르침에 역행하는 자들이 그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있으니 더욱 한심한 노릇이지요. 데카르트가 데카르트주의자가 아니었듯이, 에피쿠로스는 에피쿠로스주의자가 아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