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2026.05.15
악한 것과 약한 것, 한 끗 차이다
인간이란 생명체의 하찮음과 나약함 그리고 무지함에 대해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언행일치가 되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정말로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인간이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악 惡 해서가 아니라, 약 弱 해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뒷돈을 받거나 권한을 풀어준 비리 정치인을 비난하고, 갑질하는 기업인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들이 상대적으로 청렴해서가 아니다. 그냥 가진 게 좆 말고는 없기 때문에, 한마디로 이 커다란 세계에서 그들의 존재란 한낱 바람 앞의 촛불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구석에서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다만 도덕이라는 빌미로 하찮은 자존심을 뽐내볼 뿐이다. 애초부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권력, 돈이라는 건 생존과 직결된 큰 문제고, 그렇기 때문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추상적인 신념 따위는 내던져버리거나 최소한 게눈 감추듯 숨길 수 있는 것이다.
1조 자산가 회장에게는 고개 숙이고 연봉 5천 받아가는 사원에게 야근을 시키는 속물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은근히 얕보면서 강한 사람 앞에서는 침묵하는 양아치들은 오히려 매우 평범하다. 타인 앞에서 자신의 직업에 자조적인 불평을 늘어놓으며 자기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은밀한 방법으로 묘한 우월감을 즐기는 사짜 전문가들 역시 평범하다. 그런 평범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누군가로부터 그 뻔뻔함과 속물스러움에 대해 너무나도 당연하게 변호받을 수 있으며 또 그들을 대변하는 자들을 보면 짜증이 솟구치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곧 한 인간의 가치가 되고마는, 그런 흔한 저잣거리의 천한 자들은 분명 50년 전에도, 500년 전에도 어딘가에 똑같이 존재했을 것이다.
물론 세상은 넓고 또라이들은 많다. 돈이나 권력 따위로 회유할 수 없는 반골 투사들도 있고, 사랑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로맨티스트들도 있겠지만, 이런 종류의 위대한 인간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너무나도 순진한 사람들은 이해관계로만 돌아가는 이 험악한 세상을 견디지 못해 금방 스러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돈과 권력과 각종 이해관계에 "적당히" 민감한 놈들은 부려먹기 딱 좋다. 알아서 기어줄테니 말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약한 것은 악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럴듯함 뒤에 숨어있는 인간 본연의 나약함과 무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아무런 문제없이 으레 일어나는 자연 현상인 것이다.
근데 그것이 나에게는 왜 그토록 혐오스러우며, 왜 나는 그것을 원치도 않게, 의도치도 않게, 아무렇지도 않게 인식되는 것이며, 왜 그것 때문에 숱한 밤을 생각과 불면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