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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8
윌리엄 스타이런 <보이는 어둠>
- 우울증은 기분의 혼란 상태인데, 불가사의한 고통을 안겨주고, 냉철한 판단력을 갖춘 지성도 도저히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애매한 증상이다. 그러다 보니, 극단적인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우울증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게 된다. 일상적인 혼란쯤으로 여기는 가벼운 침울함이나 `기분 저하(the blues)' 는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것이므로, 사람들은 그것이 치명적인 질병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 이 분야의 가장 솔직한 권위자들이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시피, 심각한 우울증은 쉽사리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즉각적인 조치를 통해 체내 포도당을 적절히 재배치하면 위험한 상태를 극적으로 반전시키거나 조절할 수 있는 당뇨병 등과는 달라서, 위험한 단계에 있는 우울증을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증상의 완화가 힘들다는 점이 이 병에 걸린 사람을 가장 지치게 만드는 요소이며, 때문에 우울증은 심각한 질병의 범주에 포함된다.
- 어떤 현상을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만약 이 질병이 쉽사리 표현 가능한 것이었다면, 이 오래된 고통에 시달렸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자기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경험했던 고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이 병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우울증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건강한 사람의 일상에 기초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제 확실한 것은, 다시 한 번 고통이 찾아올 내일 혹은 뒷날, 나는 인생이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적어도 나 스스로는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었다.
- <뉴욕 타임즈> 에 실렸던 내 글들은 급히 서둘러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반응 역시 즉각적이었으며 엄청났다. 자살과 자살 충동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 것을 제외한다면 내 의견이 그렇게 독창적이거나 대담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금기, 치욕, 비밀로 취급되는 자살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를 내가 과소평가한 모양이었다.
그처럼 압도적인 반응은 내가 많은 영혼들이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렷던 은밀한 벽장문을 열어 젖혀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들은 자신들 역시 내가 묘사한 그런 느낌을 경험했다고 주장했다. 처음으로 난 내 프라이버시가 침범당하더라도 나의 이야기를 공론화할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이 일을 계기로, 파리에서 우울증으로 인해 초래되었던 상세한 사례들을 기록함으로서 이 병과 진행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 유용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으며, 한두 가지 가치있는 결론이 도출됨으로써 우울증에 대한 준거들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 우울증은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헝클어진 미로였다. 비정상적이고 불가사의한 화학 작용과 행동과 유전적인 요인이 복잡하게 꼬여 있기 때문에 원인을 아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 병든 뇌에 깃들인 정신, 그리고 그 정신에 작동하는 사악한 속임수가 초래한 절망은 과열된 방에 감금된 존재가 느끼는 참혹한 불쾌감과 흡사했다. 끓어오르는 가마솥을 스치는 미풍조차 없었다. 이런 질식할 것 같은 감금 상태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었으므로 끊임없이 망각을 생각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 중증의 우울증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은 제 2의 자아가 따라다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제 2의 자아는 일종의 유령 같은 관찰자로서, 본래 자아가 경험하는 치매 상태가 전혀 없는 냉정한 호기심을 갖고, 그가 다가오는 재앙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혹은 어떻게 무너지고 마는지를 관찰한다. 이 모든 행위에는 연극적인 요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