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2026.07.30
내가 가진 레베카 증후군, 그리고 사랑에 대한 생각
답답해서 손 가는대로 씀
레베카 증후군은 대프니 듀 모리에가 쓴 <레베카>라는 소설에서 유래된 말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 특히 연인 상대의 과거 연인에게 질투를 느끼는 비논리적인 감정이다. 그런 감정들을 단순하게 쓰레기통 비우듯 잊어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애정 표현에는 인색하지만 충분한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어째서인지 내 노력이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 같다. 그것에 대해 애인이 실망감을 느낄 때마다 묘하게 흐르는 침묵과 특유의 불편한 공기. 그런 기운이 느껴질 때면 차라리 증발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언짢아지고, 그러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애인의 전 여자친구가 머릿속에 비집고 나타난다. 영화 <조디악>의 주인공처럼 은밀한 이야기를 낱낱이 파헤치고 싶은 욕구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점차 벼랑 끝으로 서서히 나를 몰아가고 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다만 당시 내 남친을 좋아해서 먼저 다가왔다던 의문의 여성ㅡ 그리고 그가 좋아했다던 의문의 여성들에 대하여. 내가 한평생 알 수 없는 이야기들에 대하여.
(예전에 그는 이성에게 거절 당하면 포기한다는 댓글을 단 적이 있는데, 그것은 누군가를 좋아한 적이 있다는 말이다 ㅡ 나는 그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ㅡ 수컷들은 본능적으로 연하의 이성을 선호하기 마련인데 나는 연상이라는 치명적인 단점과 함께 온갖 정신병을 달고있다 ㅡ 한마디로 그는 그가 용납할 수 있는 선에서만 내게 애정을 줄 것이며 그 이상을 넘어가면 그에게 있어 나는 길에 버려진 쓰레기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그래, 쓰는 김에 에두르지 말고 솔직해지자.
남자친구의 전 여친에 대한 상상은 괴롭지만 동시에 묘한 흥미가 동반된다.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가 전 여자친구랑 떡쳤던 걸 생각하면 묘하게 기분이 나쁘면서도 꼴린다는 말이다.
어찌저찌 밀폐된 공간에 단둘이 있는 상황이 되었고, 둘이 눈이 마주치고, 침대에 드러눕고, 옷을 벗고 (내 브라끈 푸는 것도 존나 능숙 ㅎ) 서로 물고 빨고 핥고, 그러다 발정난 개처럼 박아대고, 박히면서 신음 소리를 내고, 그 신음에 또 꼴려서 더 신나게 박아대고, 서로 박히고 박히며 뜨겁게 짝짓기에 임했을 모습을 생각하자면.... 씨발.... 옥상에서 공중부양하기 직전... 오르가즘을 느끼는 기분이다.
그런 걸 왜 생각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난 한참동안 할 말을 잃을 것이다. 당사자 두 사람이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면 얼마나 좆같을까? 싶다가도 다만 그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이라는 뻔뻔한 생각이 올라온다. 나라는 인간은 역시 "정상인"으로 사고하기엔 글러먹었다 싶다.
머리를 쥐어싸매고 약을 봉지째 털어넣는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만나 끈끈한 친밀감을 보이며, 아주 신나고 뜨겁게 대화를 나누고, 몸을 섞고, 그러다 틀어져서 애초부터 "서로에게 존재하지 않던" 관계가 되는 걸 보고 있자면.... 새삼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빌어먹을 특성에 대해 놀라게 된다.
과거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부정하고 잊고 싶은 거겠지. 봄이 지나면 벚꽃은 지지만, 벚꽃이 피어 있었던 시간이 거짓이었던 것은 아니니.
그래, 너거들끼리 잘 놀아라, 난 그따위 식의 사랑을 결코 찬동하지 않겠어!
라고 굳게 마음먹었던 나 역시 한 달 전 쯤인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몸을 섞을 정도로 뜨겁게 사랑하던 인간이 좆도 아닌 전 애인이 되는 아이러니하고 허무한 경험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저 바퀴벌레같은 번식 욕구에 휩쓸려 사랑, 운명, 인연이라는 말로 상대를 기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절절한 감정으로 위장한 성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상대도 내게 그랬을지도 모르고. 내가 만났던 전 남친도, 상대의 전 여친도, 상대의 전 여친의 전 전 남친도 그랬을 지도 모른다. 맘에 들면 가볍게 집어먹는 레일 위 회전초밥처럼.
끔찍하다.
이따위 걸 사랑이라고 정의하든 말든 각자의 몫이지만, 그런 걸 사랑으로 정의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라는 사실이 내게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해'라는 말이 너무 가볍게 소비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표현을 미화하는 데 인용해서 너덜해진, 그런 오염된 단어 같다랄까. 사랑해 따위의 더러운 말로는 애인에게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하...................
내 머리는 왜 씨발 이따위 이질적인 생각 따위로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것인가?0 이 경멸과 공허를 어찌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