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2026.07.18
단테 앞에서 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인간인지 폭로함
충동적으로 외박을 하고 들어왔다. 계획은 없었지만, 최근에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로 말미암아 한 번 내뱉은 말은 얄짤없이 지키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어지러움이 머리를 지배하는 상태에서 근처의 저렴한 숙소를 찾아갔다. 어지러운 와중에도 이게 단 한 번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도 들어서였다. 어쩌면 나는 부모님과 후광속에 함께하던 고급스러운 호텔보다는, 신음 소리와 담배 쩐내가 난무하는 모텔이 분수에 맞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애인은 내게 그 무엇도 바라는 것, 원하는 것이 없다. 내가 고이 간직해온 순결함 따위도 그에겐 부스러기조차 아니며 다만 사랑의 증거로 내가 그를 원하기를 바란다. 서로를 향한 애정이 삶의 끝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징표 따위 역시 어디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나는 이 싸구려 모텔에서라도, 비 내리는 초라한 골목에서라도, 쓰레기 더미가 굴러다니는 길거리에서라도 사랑을 엮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당장은 그렇다.
스크린 안에서 영화 <리플리>가 나왔다. 살짝 현기증이 일었다. 내가 남자의 벗은 몸을 욕망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건 리플리 증후군이겠지.
서로를 끌어안아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몸을 살짝 기울이면 그의 품에 쏙 안길 수 있었다. 난 어떤 날카로운 자극을 욕망하며 그의 손을 가져다가 내 머리와 온몸을 쓰다듬어댔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신경쓰지 않았다. 놀랍게도 몇 달 전과 달리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없었다. 이제 조금만 더 살면 남성들의 양기를 빨아가는 파워당당 아줌마가 되겠지?
육신이 서로의 속으로 황홀하게 녹아 들어갔다. 나는 두 팔 두 다리로 그를 휘감았다.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마치 공중으로 솟아 올랐다 떨어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과 거친 숨소리!
이런 씨111발.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대로 억겁의 시간 동안 돌멩이가 되고 싶었다. 우리 몸에 이끼가 뒤덮일 정도로 오래도록 있고 싶었다. 이제 정절 따위는 내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 음탕한 인간이니, 어제 있었던 일을 당당하게, 원색적으로 기록에 박제해두겠다.
-
또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가진 추잡한 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구질한 모습을 여과없이 떼어내서 그의 앞에 펼쳐 보였고, 그는 떼어진 내 일부를 목격하고, 또 한번 인간의 추찹함을 확인 사살한다. 그는 내 앞에서 다정한 미소를 힐끗 지어준 뒤, 뒤돌아서 학을 떼고 진절머리를 낼 것이다. 반쪽 짜리가 되어 작아진 나는 비루하게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씨발.
예전에 기록에도 썼지만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좋아할수록 결핍이 생기는 것 같다. 사랑이란 얼마나 초라한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란 얼마나 처절하고 또 찌질한가.... 그리고 이런 식으로, 속수무책으로 무언가에 잠식당하는 걸 그 누가 견뎌낼 수 있을까.
-
이른 아침 먼저 모텔을 나섰다. 문제는 내가 저러고 있는 사이 모친에게 연락을 한 통도 하지 않았고 모친이 나를 기다리다가 한숨도 잠을 못 잤다는 것이었다. 외박이 잘못된 게 아니라, 비도 내리는 새벽에 어디서 누구랑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 잘못이었다. 모친은 온갖 짜증과 신경질이 섞인 말투로 왜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고,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냐며,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요즘 도대체 왜 그러냐며 쏘아붙인 뒤 바로 집을 나섰다...
결국은 100% 내 잘못이다. 뭐라 대꾸하지 못하고 말없이 방에 들어왔다. 옷을 벗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잠을 몇 시간 정도 자긴 했으나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존재를 간신히 유지할 정도 만큼의 기운밖에 없었다. 긴장이 풀려서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고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은 그대로 내동댕이쳐졌다.
하..........
나는 모텔에 홀로 남겨진 애인을 생각한다. 그가 섭섭함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불안감에 휩싸인다. 단테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킁킁대며 나를 맡고있다. 무언가를 애원하는 듯한 반짝한 눈동자로 마치 가엾어 하는 듯 얼굴을 핥아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