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2026.05.30
극단주의자
자연계의 물리법칙, 동양 철학의 지혜와 같이 진리라고 불리는 것은 대개 극단주의자에 의해 발견된다. 진리는 위대하고 극단적인, 혹은 해괴망측한 이야기 속에 녹아있지, 사회의 상식과 규범을 따르는 표면적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녹아있지 않다. 그런 요상한 관점들이 보통 사람들의 이해력 밖에 있기 때문에 좀처럼 주목받기 어려운 것이다.
언젠가 대학생 시절 읽었던 <도덕경>에서 노자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그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양이 극단에 이르면 음이 되고 음이 극단에 이르면 양이 되는 것처럼, 상호전좌라는 말처럼, 모든 건 관점에 따라 뒤집어 볼 수 있다.
"만나는 자들을 모두 죽여라,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만 해탈할 수 있다."는 <임제록>의 극단적인 문구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타인을 죽이라는 게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느껴지는 모든 미혹의 껍질을 벗겨내야 진짜 나, 진아를 알 수 있다는 의미라고 난 생각한다.
난 극단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또 극단적인 면을 갖고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 역시도 100%는 아니지만 어떤 부분에서 극단적인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한 주장을 고수하는 이분법이 아니라(그건 논리적으로 위험한 일이다) 무슨 일을 하든 능력이 닿는 한 끝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내 안에 숨 쉰다는 점에서, 나는 분명 극단적인 면이 있는 것이다. 어느 길을 가든 중간 지점에 멈춰서서 어중간하게 만족하고 마는 게 아니라, 끝까지 도달해야 보다 확실한 인생의 이정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향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종종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얼척없게 손해를 입고, 스스로에게 환멸과 우울감을 느끼고, 밑도 끝도 없이 괴로워질 때도 있다. 일상이 엉망 진창인 것이다. 아무래도 행복을 위해서는 극단적인 삶보다는 "적당히"라는 말로 대변되는 균형잡힌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이 자외선이나 적외선보다는 그 중간의 가시광선, 그 중에서도 무지개가 드러내는 아름다운 세계를 보는 편이 좋은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주저하지 않겠다. 비록 모든 일과 인간 관계에 있어 부족한 점이 많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얄팍한 자기 만족에 그치지 최상급의 관점에서 철두철미하게 극복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