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2026.08.03
외모만큼이나 부조리한 게 없지만 그것을 인정한다
외모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물리법칙이다.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는 현상계에 국한된 사실이지만, 유전자의 장난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전자의 우연한 장난이기 때문에 단지 얼굴만 봐서는 그 사람의 정신 세계나 잠재 가능성까지 온전하게 파악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외모가 잘생기고 아름다운 사람들은 구태여 그것을 뽐낼 필요가 없이 존재 자체만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외모만큼이나 선천적인 권력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유전자의 조합이 뛰어난 것만으로 사랑받는 메리트를 누리며, 어떤 사람은 좆같이 생긴 외모 때문에 음지에서 컴플렉스에 시달리며 이성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
미모는 곧 진화의 산물이고, 아름다운 미모가 곧 건강하고 우수한 유전자를 식별해주는 길잡이이기 때문에 남녀불문 예쁘고 준수한 외모를 선호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식학적 문제다. 좋은 외모로 태어나는 건 분명 루크레티우스의 말처럼 신의 영광, 은총을 받고 태어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나는 그다지 예쁘지 않다. 잘생기지도 않았다. 차라리 좆같이 생겼다는 데에 더 가까운 인물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진찍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는다. 만약 내가 조각 미녀였다면 카메라에 얼굴 담기가 취미였을 수도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추녀에 가까운 인물이고, 그거에 딱히 절망하거나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따지면 그 어떤 것도 더욱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미인으로 비춰지고 싶은 마음을 품고 지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그 어떤 은밀한 욕망도 내 안에 남아있지 않다. 그 누구에게도 예쁜 모습으로 보이고 싶지 않고, 그런 껍데기 따위로 사랑받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겠다.
이미 엎질러 버린 물을 주워 담을 수 없고 깨져버린 물컵도 복구할 수 없는 것처럼, 예뻐 보이고 싶은 욕망 이제 되돌릴 수 없이 수명이 다해 증발한 것 같다.
이미 너무 많은 감정 소모를 한 탓이기도 하고, 외모에 대한 부조리를 극복하기에 나라는 개인이 힘없고 나약한 탓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냥 나이가 들어가면서, 또 나로서 사는 데 익숙해지면서, 존재에 대한 앎이 예전과 달리 깊어져가면서 외모 따위가 단지 내 일부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