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2026.06.07
데이비드 핀쳐 <Zodiac, 조디악(2007)>
데이비드 핀쳐 감독의 영화.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조디악 킬러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다. 1968년부터 1990년대까지 수사가 이어졌기 때문에 러닝 타임이 2시간 30분 정도로 길 수밖에 없었다.
보통 연쇄살인마 영화는 사건 발생 - 단서 발견 - 추적 - 검거 순으로 긴장감이 유지되는데 조디악은 사건 - 단서 발견 - 추적 - 실패 - 증언 - 용의자 확인 - 원점 - 또 다른 발견 - 실패 순으로 무한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1절만 끌었으면 괜찮았을텐데 2절 3절 뇌절 씨발 ㅎㅎ 답답한 마음에 꺼버리고 싶었지만 연출이 아닌 실화 바탕이기도 하고 태호랑 같이 있었기도 해서 어찌저찌 봄
일단 초반부에 바람난(?) 연인들이 총맞고 죽는다. 그리고 범인이 경찰, 신문사에 이상한 암호문을 보내며 자기를 "조디악(Zodiac)"이라는 가명으로 편지를 보내며 수사 기관을 조롱한다 (난 생뚱맞게도 암호를 보고 있는 그레이스미스가 아들에게 "조디악"이라고 말하는 걸 듣고 꼬마 이름이 조디악인가 싶었고, 꼬마가 나중에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까 예상했는데 아니었다ㅋㅋ) 강변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커플이 칼로 난도질당하고, 택시 기사가 목에 총을 맞고 죽고, 갓난아기를 안은 엄마가 납치를 당할 뻔하다가 구조되는 일도 일어난다.
경찰은 유력 용의자들을 조사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한다. 묘사하자면 길어서 생략하지만, O.J 심슨 사건처럼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장기 미제로 접어드는 부분에서 너무 질질 끌었던 것 같다.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와 기자는 결국 지쳐서 포기하고 만다. 그런데 정작 그레이스미스는 와이프와 자식들까지 내팽기치고 사건의 내막에 집착한다. 피해자도 경찰도 아님에도 말이다.
그는 결국 아서 리 앨런(Arthur Leigh Allen)을 킬러라고 확신한다. 아서 리 앨런은 유력한 피의자의 실명이다. 그 근거는 과거에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발언, 조디악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시계, 생존 피해자 진술과 유사한 외모 때문이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동양인인 내 눈에 보기엔 존 캐럴 린치랑도 너무 닮았다. 실제로 앨런은 1992년에 사망했고 그가 죽은 후에도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감독은 조디악 킬러 사건을 상기시키고, 진실을 찾고 싶어하는 인간의 집착과 세월이 삶을 잠식시키는 것에 대한 씁쓸함도 동시에 느끼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피묻은 세월, 불안에 점철된 사람들, 증오와 저주에 찬 그 모든 세월이 결국은 아무 효용없이 희미해질 것이다. 여러모로 전반부보다는 후반부를 좀 더 높게 평가하고 싶다.
별개로, 굳이 기록을 쓰는 이유는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랑 나랑 뭔가 닮아 있다는 점을 느껴서였다...
태호는 내가 무엇을 질문하든지 가능한 선 안에서 최대한의 답변을 내놓겠다는 의사도 밝혔지만 나는 그날 깨달았다. 그가 아무리 모든 이야기를 상세하게 해준다고 한들 내 궁금증이 해소가 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A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B가 궁금해지고, B를 알게 되면 C가 궁금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알아내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하여, 나는 그냥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상태에 놓이면 계속 찜찜하고, 그 찜찜함을 해소하고 싶어서 또 다른 설명을 찾아 나서는데, 그것이 결국 내 삶을 좀먹는다면 그냥 모르는 채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끊임없는 궁금증을 느끼는 건 고통스럽지만, 그것에 조금씩 적응하며, 묻어두며 어쨌거나 살아가는 것에 가깝다. 그레이스미스가 결말에서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