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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0
문유석 <판사유감>
"백 명의 죄인을 석방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1. 우리는 신용불량자 400만이 어떻고 하며 쉽게 숫자로 이야기하지만 그 한 명 한 명은 숫자가 아닌 `피가 흐르는 사람' 이고, 가정이 있고, 부모 형제가 있고 아이도 있습니다. 400만 명이 신용불량자라면 최소 400만 가정이 빚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며, 그중 상당수의 가정은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괴되는 것입니다.
2. 소비의 하방경직성 : 소득이 줄었음에도 종전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는 성향으로 인해 빚이 늘어나는 현상
주로 대출과 현금서비스를 받아 교육비, 병원비 등을 내며 돌려막기 - 모럴 해저드의 주된 원인
모럴 해저드를 걱정하는 분들이 법원을 비판하는 이유는 면책불허와 사기파산을 통해 악용하기 때문
(금융기관이 신용 조사를 제대로 했다면 돈 갚을 능력 없는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이를 숨기고 면책 신청을 하면 금융기관이 파악하는 자료를 첨부하여 법원에 이의 신청하면 법원이 참작)
하지만 남은 여생 내내 소박한 행복을 누릴 최소한의 숨 쉴 여유조차 없다면 과연 자포자기하지 않고 계속 일해서 빚을 갚아 나갈 수 있을까요?
"계약은 준수되어야 한다" 는 법 원칙에 따르면 채무자가 죽는 날까지 모든 재산과 수입을 채무 변제에 투입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런 무자비한 채권 추심은 결국 채무자를 쓰러지게 할 뿐 입니다. <베니스의 상인> 에서 포샤가 간파했듯, 샤일록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채무자의 살 한 파운드만을 도려낼 수는 없는 것. 파산한 기업은 청산되어 소멸하지만, 파산한 인간은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도전하다가 쓰러진 인간에게는 무덤 대신 두 번째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활자가 아닌 사람을 통해 제가 배운 것입니다.
3. 파산면책을 이용해 남의 빚을 안 갚는다고요? 안 갚는 것이 아니라 못 갚는 것입니다. 빚 독촉 전화에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궁지에 몰아넣어 채권자들과 이 사회가 얻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기본적으로 어떤 형벌이 가볍고 무거운지 판사들과 일반 국민들의 의식 사이에 너무나 큰 괴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4. 엄벌주의는 사실 인간 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입장일 것입니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이나 구약성서, 고조선의 팔조금법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본이 되는 형벌 이론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동해보복입니다. 현대에도 아랍권, 중국, 북한 등의 형벌은 상당히 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엄벌주의' 가 범죄율을 낮추는 특효약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프랑스보다 4배 더 형벌이 심하므오 4배 더 안전한 국가일까요? 거꾸로 4배 더 무거운 형벌이 필요할 정도로 위험 요소가 많은 사회 아닐까요?
또한 엄벌 여부를 판단할 때는 징역을 하루도 받아본 적 없는 일반인들이 막연히 영화에서 본 것만 가지고 추측하는 것과 실제 형을 복역하는 사람들이 복역 기간이나 그 후의 사회생활에서 받게 되는 고통이나 불이익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교정행정의 발전과 재소자의 인권도 신장되고 있지만, 아직 예산의 한계로 인해 교도시설 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5. 필벌주의는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언제나 완벽히 충족되지 않는 욕구 아래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경쟁이나 투쟁을 하는 존재이기에 모든 이들이 규칙을 완벽히 준수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범죄를 완벽히 적발해내 벌하는 사회는 엄격한 통제 사회가 되는데, 오죽하면 엄격한 청교도 통치자 크롬웰이 사망하자 그동안 지나치게 도덕적으로 살아야 했던 백성들이 기뻐 만세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인간사는 그렇게 단순 명쾌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범죄를 절멸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또 다른 위험을 낳기에 적정 선을 넘지 않도록 범죄를 관리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문명의 발전 방향은 형벌을 적절하게 억제하는 방향이지, 그 반대는 아닙니다. (CEO범죄 등) 화이트칼라 범죄에서의 일반 범죄와 균형을 잃은 양형 역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인식으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문제입니다. 판사로서는 `징역 1년의 무게' 를 함부로 가벼이 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6. 사실 사회 여러 부문의 본질은 부자나 승자의 저금통에 어리석은 빈민들이 스스로 자기 푼돈을 넣어 주는 것의 반복일지 모릅니다. 카지노도, 도박도, 복권사업도, 경마, 경륜도, 투자도, 피라미드도.
7. 법관으로서 국민들의 분노와 엄벌 여론을 인민재판 식으로 맹목 추종하여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경계하기만 할 일은 아닙니다. 법이론적으로도 형사 책임의 본질은 비난 가능성입니다. 한 사회 공동체나 법 공동체가 여러 범죄 중 어떤 행위에 대해 유독 높은 비난을 가한다는 것은 사회가 평가하는 그 행위의 비난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법관에게 부여한 양형의 재량에 대해 스스로 삼가고 자의를 막기 위해 최대한 편차를 줄이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만의 하나 그 재량을 두려워하여 다른 것을 다르다고 선언하지 못하고 선례의 기준으로 도피하여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8. 암호 같은 법률 용어와 형식적 문구의 방패 뒤에 숨어 정작 중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해 주지 않는 안전한 판결문보다 비록 비판을 받을지라도 재판부의 고민과 결론을 솔직히 드러내는 판결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