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2021.05.02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주인공이 지방으로 발령받은 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다 동료들의 추잡한 행동에 실망하여 사직서를 내고 도쿄로 돌아가 기요를 만났는데, 그녀가 폐렴으로 죽었다는 결말로 매듭지어진 것을 보아 뭔가 성급하게 마무리지은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사실 판타지나 추리 소설과 같이 흥미자극 위주의 작품이 아니라면, 군더더기 없는 전개에 삶의 본질을 담은 작품이 더 가치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도련님'의 생각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옮겨 적어놓는다.
p.46
한 시간만 걸으면 구경할 거리도 없는 손바닥만한 동네에 살면서 달리 재주도 없으니 덴푸라 사건을 러일전쟁처럼 떠들고 다니는 것이리라. 딱한 놈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교육을 받으니 아주 되바라진, 단풍나무 분재 같은 소인배가 되는 것이다.
p.64
대체로 낚시나 사냥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정한 인간들뿐이다. 비정하지 않다면 살생을 하며 즐거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고기든 새든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는 살아 있는 것이 즐거울 게 뻔하다. 낚시나 사냥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면 별개의 문제지만, 아무 어려움 없이 살면서 생명을 죽이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니 정말 분에 넘치는 소리다.
p.76
생각해보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나빠지는 일을 장려하고 있는 것 같다. 나빠지지 않으면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간혹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을 보면, 도련님이라는 등 애송이라는 등 트집을 잡아 경멸한다. 그렇다면 초등학교에서 윤리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지 마라, 정직하라고 가르치지 않는 편이 낫다. 차라리 큰맘 먹고 학교에서 거짓말하는 법이라든가 사람을 믿지 않는 비법, 또는 사람을 이용하는 술책 등을 가르치는 것이 이 세상을 위해서도, 당사자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p.79
세상은 참 묘하다. 주는 것 없이 미운 놈이 친절하고, 마음 맞는 친구가 나쁜 놈이라니 사람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고 있다. 조만간 불이 얼고 돌이 두부가 될지도 모르겠다.
p.98
놀란 것은 내가 하숙방을 비우자 바로 다음 날 나와 교대하듯 알랑쇠가 태연한 얼굴로 내가 쓰던 방을 차지한 사실이다. 만만치 않은 나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상은 온통 사기꾼들뿐으로 서로 속고 속이며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싫어졌다.
세상이 이런 곳이라면 나도 지지 않고 남들처럼 속이지 않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소매치기한 돈까지 가로채야 세 끼 밥을 먹고 살 수 있다면,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그렇다고 팔팔하게 건강한 몸으로 목을 맨다면 조상님 볼 면목이 없는 데다 소문이라도 나면 난처하다.
p.107
세상에는 알랑쇠처럼 나서지 말아야 할 자리에 꼬박꼬박 얼굴을 내미는 건방진 자도 있고, 산미치광이처럼 자기가 없으면 일본이 곤란할 거라는 듯한 상판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는 자도 있다. 그런가 하면 빨간 셔츠처럼 포마드와 호색한의 도매상을 자처하는 자도 있고, 교육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프록코트를 입으면 바로 자신이 된다고 말하는 듯한 너구리도 있다. 다들 그 나름대로 뽐내고 있지만 끝물호박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마치 볼모로 잡혀온 인형처럼 얌전히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p. 144
학생들이 용서를 빈 것은 진심으로 뉘우쳐서가 아니었다. 단지 교장의 명령을 받고 형식적으로 머리를 숙였을 뿐이다. 머리만 조아리고 교활한 짓을 계속하는 장사꾼들과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용서는 빌지만 결코 장난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학생들과 같은 자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p.158
신문이란 당치 않은 거짓말을 하는 물건이다. 세상에 신문처럼 허풍을 떠는 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해야 할 말을 오히려 저쪽에서 늘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