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26.01.30
Jim Jarmusch- 패터슨(2016)
패터슨의 삶은 지루하고 따분하기 짝이없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시리얼을 먹고, 버스를 몰고,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퇴근 후 개 산책을 시키는 길에 맥주를 마시고 귀가한다. 이렇게 보면 영감이 비집고 설 틈이 없는 일상이지만 아마추어 시인인 그는 도처에서 글감을 수집한다. 성냥부터 애인, 폭포, 쌍둥이 등등 일상의 모든 경험이 예술적 영감의 소재가 된다 (스마트폰을 소지하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과 사물이 누군가에 의해 재탄생하는 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신비 중 하나다. 실제로 영화에 나오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시인이 같은 방식으로 시를 썼다고 하는데, 짐 자무시 감독이 그의 시를 인상깊게 읽었고, 그의 고향인 패터슨 지역을 여행하다가 영화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는 후문을 보았다. 자기 생애를 더듬으며,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뛰어가 그것에 문학적인 상상을 덧입히고, 자신의 이야기 한 조각으로 숙성시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부분이었다. 패터슨이 집을 비운 사이 기르던 개가 비밀 노트를 죄다 찢어발긴 것이다. 자신이 그동안 써온 시가 죄다 날아갔음에도 그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홀로 산책하며 벤치에 앉는데, 우연히 옆에 앉은 일본인이 빈 노트를 주면서 때로는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해준다.
그렇다. 모든 것은 백지에서 시작되었다. 하얗게 빈 종이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있던지간에 빈 페이지를 매일매일 채워나가며 살아있는 감각을 느끼는 과정이 결국 소소한 행복이고, 유한한 삶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실존적으로 구현하는 일환이다.
난 거대한 세계관이 집약된 영화를 선호하는데, 꼭 위대한 스케일을 가진 교훈만이 영감이 되는 건 아닌 듯 하며, 어쩌면 내 영화 취향이 지나친 도파민 추구에만 쏠려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꼭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어떤 작품이든 의미 부여하기에 따라 좋은 교훈을 얻어갈 수 있으니 간략하게 남겨봤다. 아버지 수발로 고생하는 10년지기 친구에게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