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2026.04.01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 말더듬이가 첫마디를 소리내기 위해서 몹시 안달하는 동안은, 마치 내계의 농밀한 끈끈이로부터 몸을 떼어 내려고 버둥거리는 새와도 흡사하다. 겨우 몸을 떼어 냈을 때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물론 외계의 현실은 내가 버둥거리는 동안, 휴식을 취하며 기다려 줄 것처럼 생각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기다려 주는 현실은 이미 신선한 현실이 아니다.
- 어째서 노출된 창자는 처참한 것일까? 어째서 인간의 내부를 보면 끔찍해서 눈을 가려야만 하는가? 어째서 피의 흐름이 사람에게 충격을 줄까? 어째서 인간의 내장이 추한 것일까? 그것은 매끄럽고 젊음에 넘치는 피부의 아름다움과 완전히 동질의 것이 아닌가?
- 패전의 충격, 민족적 비애 따위에는, 금각은 초연하였다. 혹은 초연을 가장하고 있었다. 어제까지의 금각은 이렇지 않았다. 결국 공습으로 불타지 않았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이 금각으로 하여금, 다시금, '옛날부터 나는 여기에 있었고, 미래에도 영원히 여기에 있으리라'는 표정을 되찾게 하였음에 틀림없다.
- 모두로부터 나는 격리되어 있었다. 나에게는 돈도 없고, 자유도 없고, 해방도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라고 내가 말할 때, 17세의 내가, 아직 그다지 뚜렷한 형태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결의를 굳히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 악의 광채. 그렇다. 설령 사소한 악이라 하더라도, 악을 범하였다는 명료한 의식은, 어느 틈엔가 나에게 갖추어져 있었다. 훈장처럼, 그것은 내 가슴 안쪽에 매달려 있었다.
- 내가 안짱다리라는 조건이 간과되고 무시된다면, 나의 존재는 사라지고 만다는, 네가 지금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은 공포에 나도 사로잡혀 있었던 거야. 내 조건을 전적으로 시인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인간보다 몇 배나 호화스러운 구상이 필요할 테니까. 인생은 하여간에 그런 식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지. 우리들과 세계를 대립 상태로 만드는 무서운 불안은, 세계이건 우리들이건 어느 쪽인가 변하면 해소되겠지만, 변화를 꿈꾸는 몽상을 나는 증오하니까,
- 스포츠가 도처에서 공개되고 있지? 그야말로 말세의 징조야. 공개하여야 할 건 조금도 공개하지 않고 말이야. 공개하여야 할 것이란 즉 사형이지, 어째서 사형을 공개하지 않는 걸까? "전쟁 중의 안녕 질서는, 비명에 죽어 가는 사람들의 죽음을 공개함으로써 유지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니?"
- 그의 철학이 사기술로 가득하면 가득할수록, 그만큼 그의 인생에 대한 성실성이 증명되는 듯이 여겨졌던 것이다.
- 만약 입을 열면, 지금 이 이야기를 들은 감동은 그때의 신비한 감동을 배신할 듯이 여겨졌고, 입 밖에 내지 않음으로 해서, 지금의 이야기는 신비스러운 수수께끼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신비스러운 구조가 이중이 되어 한층 깊어질 듯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 나는 쓰루카와의 죽음을, 1년 가까이 애도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독이 시작되자, 나는 그것에 쉽게 익숙하여졌고, 아무와도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생활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러이 깨달았다. 삶에 대한 초조감도 나에게서 사라졌다. 죽어 지내는 나날은 상쾌하였다.
- 소년 시절부터 남들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 유일한 긍지가 되었으며, 사실을 이해시키려는 표현의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은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다.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자신을 명석한 인간인 것처럼 여기려고 하였으나, 그것이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충동에서 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한 충동은 인간의 본성에 따라서, 자연히 타인과의 사이에 놓이는 다리도 되기 때문이다.
- 내 귓전에 누누이 늘어놓는 가시와기의 비행, 그 악랄하며 비열한 갖가지 수법, 그러한 것들은 모두가 단지 `인생'이라는 말을 내 귀에 전하여 줄 뿐이었다.
- 눈 앞의 젖가슴은 살 그 자체이며, 하나의 물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존재의 따분한 증거이며, 삶의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단지 그곳에 드러난 그 무엇이었다. 여자의 젖가슴이라는 사실을 넘어, 점차로 무의미한 단편으로 변모될 때까지, 샅샅이 보고 말았다.
- 대체로 나의 체험에는 우연의 일치와도 같은 것이 작용하여, 거울로 된 복도처럼 하나의 영상은 무한히 깊은 곳까지 이어져 있었기에, 새로이 접하는 사물에도 과거에 보았던 사물의 모습이 확실히 비치었고, 이러한 유사성에 이끌려서 어느 틈엔가 복도 안쪽 한없이 깊숙한 곳에 있는 방 안에 발을 들여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운명이라는 것에, 우리들은 갑자기 부딪히는 것이 아니다. 훗날 사형을 당하게 되는 사내는 평소에 다니던 길의 전봇대나 건널목에서도 끊임없이 사형대의 환상을 보기 때문에 그 환상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 나는 벌의 눈이 되어 보려고 하였다. 국화는 한 점의 흠집도 없이 노랗고 단정한 꽃잎을 벌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자그마한 금각처럼 아름답고, 금각처럼 완전하였지만, 결코 금각으로 변모하는 일이 없이 국화꽃 한 송이일 뿐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확고한 국화, 한 송이의 꽃, 아무런 형이상학적인 암시도 지니지 않는 하나의 형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이처럼 존재의 절도를 유지함으로써, 넘칠 듯한 매력을 풍기며, 꿀벌의 욕망에 어울리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형태도 없이, 비상하고, 흐르며, 약동하는 욕망 앞에서, 이렇듯 대상으로서의 형태에 몸을 숨긴 채로 숨쉬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스러운 일인가!
- 나는 이때처럼 현세를 완전히 버린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생활의 자질구레한 부분, 돈, 여자, 모든 것에 하나하나 손을 더럽히면서도, 이처럼 현세를 모멸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나는 혈색 좋고 따뜻한 시체를 만지는 듯한 혐오감을 느꼈다.
- 죽은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 비하여 얼마나 사랑받기 쉬운 모습을 하고 있는가!
- 인식이란 인간의 바다이기도 하고, 인간의 벌판이기도 하며, 인간 일반의 존재 양식이지. 너는 이제 와서 남천이 되겠다는 거니? 미적인 것, 네가 좋아하는 미적인 것, 그건 인간의 정신 속에서 인식에 위탁된 나머지 부분, 잉여 부분의 환영이야. 네가 말하는 `삶을 견디는 다른 방법'의 환영이야. 원래 그런 건 없다고도 할 수 있지. 할 수 있지만, 그 환영을 강력하게 만들고, 최대한의 현실성을 부여하는 건 역시 인식이야. 인식에 있어서 미는 결코 위안이 아니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