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2020.01.05
유발 하라리 <극한의 경험>
오후 12:17 2020-01-05
1.
21세기 영국 육군 중위 헨리 폴 메인워링 존스는 1917년 전사하기 사흘 전에 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전쟁이 참혹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대단하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 전쟁 속에서 우리가 현실과 직접 대면하니 말이야. 평시에 세상 사람 십중팔구를 차지하는 천박하고 상업적인 생활의 어리석음과 이기심, 사치, 전반적인 옹졸함 등이 전쟁에서는 최소한 더 정직하고 솔직한 잔인함으로 대치되지. 평시에 인간은 개인의 하찮은 삶에만 매몰돼 자기 안위나 돈 문제 따위만 걱정하며 사소한 것에 매달리지. 다시 말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거야. 얼마나 치사한 인생이냐!
이와 반대로 전쟁에서는, 네가 만일 전사한다고 해도 어차피 당할 일을 몇 년 앞당겼을 뿐이고, 조국을 지키다 죽었다는 만족감을 얻게 되지. 사실 네가 한 가지 이상을 깨달은 셈인데, 내가 아는 한 네가 일상 생활에서는 거의 깨달을 수 없는 이상이야. 일상생활이라는 것이 상업적이고 이기적인 바탕 위에서 굴러가기 때문이지. 속담에도 이르듯 손을 더럽히지 않으면서 `성공' 을 바랄 수는 없는 법이거든.
개인적으로 나는 전쟁을 겪게 되어 쾌재를 부를 때가 많아. 삶이 얼마나 사소한지 전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야. 전쟁이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벗어날' 기회를 주었다고 할까. 내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난 4월처럼 대규모 작전을 개시할 때 느낀 그런 격렬한 흥분을 평생 경험한 적이 없다는 거야.
2.
프랑스의 제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장 노통 크뤼는 "용기와 애국심, 희생, 죽음과 관련해 우리는 지금까지 내내 기만당했다. 첫 총성이 울리는 순간 우리는 참전용사에 관한 소문과 일화, 역사, 문학, 예술, 대중, 연설 등이 모두 거짓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3.
소설은 거의 모든 군대 관습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한다. 이 소설의 통렬한 비판이 힘을 갖는 이유는 군대 현실이 더 깊은 층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원초적 장면)
요사리안이 살펴보려고 허리를 숙였다. 스노든은 위아래 한 벌로 된 작업복 위에 방탄복을 입고 있었는데, 겨드랑이 위쪽에서 스며 나오는 이상한 빛깔의 얼룩이 보였다. 요사리안은 심장이 멎었다가 다음 순간 아주 격렬하게 뛰는 느낌이 들었고, 숨쉬기도 어려웠다. 스노든의 부상 부위는 방탄복 안쪽이었다. 요사리안은 스노든의 방탄복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자기 입에서 터져 나오는 새된 비명을 들었다.
스노든의 끈적한 내장 한 무더기가 바닥으로 쏟아졌고,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7센티미터가 넘는 대공탄 파편이 한쪽 겨드랑이 밑을 뚫고 들어가 옆구리에 엄청난 구멍을 만들고 반대쪽으로 터져 나가며 스노든의 얼룰덜룩한 내장 몇 리터를 모두 쏟아낸 것이다. 요사리안은 다시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눈을 세게 눌렀다. 공포에 질려 이가 딱딱 부딪쳤다.
그는 비통한 심정으로 노려보았다. 간, 폐, 콩팥, 갈비뼈, 위 등과 함께 스노든이 점심으로 먹은 토마토 스튜 찌꺼기도 뒤섞여 있었다. (....) 그는 한기를 느꼈고, 몸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그는 스노든이 지저분한 바닥에 쏟아낸 끔찍한 비밀을 허탈하게 내려다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그의 내장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인간은 물질이다.
이것이 스노든의 비밀이었다.
그를 창 밖으로 던지면 떨어질 것이다. 불을 붙이면 타오를 것이다. 땅에 묻으면 쓰레기처럼 썩을 것이다. 혼이 빠져나가면, 인간은 쓰레기다. 스노든의 비밀이 바로 이것이었다. 단지 스노든의 육체 뿐만 아니라 스노든 자체가 찢을 수 있고 부피를 측정할 수 있고, 쏟아내고, 바닥에 펼칠 수 있는 사물이라는 것이다. 너무 물질적이어서 어디까지 토마토 스튜가 어디부터 스노든인지 구분할 수도 없다.
( 20세기의 수많은 전쟁 회고록과 전쟁 소설, 전쟁 시, 회화, 영화가 이와 비슷한 원초적 장면을 기초로 삼는다. 작가는 죽음과 부상 장면을 외설스러울 정도로 세밀하게 거듭 묘사하며, 독자들은 펼쳐진 내장 속에서 전쟁과 세상의 비밀을 읽어내고, 펼쳐진 내장을 보고 인간이 아주그냥 밑바닥까지 철저하게 물질로 이루어져 있음을 배우는 것이다.....)
4.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
1555년 로욜라가 구술한 자서전은 신에 대한 환영과 계시를 담고 있다.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건이 그에게 깊은 진실을 밝혀지주만, 팜플로나 포위공격과 그의 부상은 예외다.
로욜라는 자서전 어디에서도 이 사건들을 회고하지 않으며, 그 사건들에서 교훈을 끌어내지도 않는다. 그는 기사도에 관한 세상의 생각과 귀족의 세속적 허영심을 끊임없이 비난한다. 그 과정에서 종종 개인적인 계시를 토대로 삼지만, 절대 팜플로나의 전쟁 경험을 활용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볼 때 더욱 놀라운 사실은 로욜라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서전에 따르면, 영적인 삶을 시작한 초기에 그를 가장 괴롭힌 문제는 죄와 고해에 대한 강박관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과도한 명예심과 영광에 대한 열망 때문에 팜플로나에서 불행하게 죽거나 다친 사람들을 생각한 적이 없으며, 그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기색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는 자서전 전반에서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관점을 언급하며 독자들에게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전쟁에 대한 잘못된 관점의 위협은 경고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해하기 위해 신께 `고통의 눈물, 고난' 을 간구하라고 추천한다.
하지만 자신이 팜플로나에서 경험한 실제 고통이나 그곳에서 실제 목격한 주검들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죽거나 다친 인간 육체의 정신적 이미지가 계시의 핵심 원천인 반면, 그가 파믈로나에서 실제 목격한 주검이나 자신의 부러진 다리는 아무것도 밝혀주지 못했다.
피와 내장보다 잉크와 종이가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고, 상아탑 안의 사상가들이 전장의 전투원보다 현명했다!
5.
블렌하임 Blenheim 전투 후에 마틴데일은 이러한 기록을 남긴다.
친구를 땅에 묻으며 하루종일 조문했다. 아, 군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술고래들의 어리석음이 참으로 놀랄 지경이구나! 함께 술을 마시고 여저를 유혹하던 동료가 한순간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에게 영혼이 있다거나 죽으면 자신의 영혼이 어떻게 될지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불경을 이성적인 존재가 범할 수 있는 최악의 광기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