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2026.04.01
알베르 까뮈 <페스트>
p.12
어떤 한 도시를 아는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우리의 이 자그마한 도시에서는 (기후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모든 것이 다 함께, 열광적이면서도 무심하게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여기는 사람들이 권태에 절어 있으며 여러 가지 습관을 붙여 보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민들은 일을 많이 하지만, 그건 한결같이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에서 하는 일이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장사에 관심이 있다. 그들 자신의 표현대로 우선 사업을 하는 데 골몰해 있는 것이다.
물론 단순한 즐거움에 대한 취미도 없지 않아서, 여자와 영화와 해수욕을 좋아한다. 그러나 대단한 분별력이 있어서 그런 재미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위해 아껴 두고 주중의 다른 날들에는 돈을 많이 벌려고 애를 쓴다. 저녁때 직장을 나서면 그들은 일정한 시간에 카페에 모여 앉거나 늘 같은 대로를 거닐거나 그러지 않으면 자기 집 발코니에 나와 앉는다. 아주 젊은 패들의 욕망은 격렬하면서도 한순간의 짧은 것인 데 비해서, 나이 많은 축들이 빠지는 취미란 기껏해야 공 굴리기 모임이나 친목회 회식이나 트럼프 놀음에 돈을 듬뿍 거는 서클의 선을 넘어서지 않는다.
p. 20
전쟁이라는 것은 필경 너무나 어리석은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말도 없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은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늘 자기 생각만 하고 있지 않는다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민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네들 생각만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휴머니스트들이었다. 즉 그들은 재앙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p. 95
이해와 정과 살로써 맺어졌던 사람들이ㅡ 이제는 겨우 열 마디 정도가 고작인 전문 電文의 대문자 속에서 그 옛 정의 흔적을 더듬어 보게끔 되었다. 그리고 사실 전보에서 쓸 수 있는 문구들은 곧 바닥이 드러나고 말기 때문에, 오랫동안의 공공 생활이라든가, 공통으로 품고 있는 애욕 같은 것들이 `잘 있소, 당신을 생각하며, 사랑하오.' 같은 상투적인 문구의 정기적인 교환으로 급속히 축소되고 말았다.
p. 100
아무 소용도 없는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모든 죄수들과 모든 유형수들의 깊은 고통을 그들은 맛보고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되씹곤 하는 그 과거조차도 후회의 쓴 맛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p. 111
사실 그는 오래 두고 마음속에서만 되씹었으며 괴로워하던 끝에 그 심정을 표현한 것이었으며, 그가 상대방에게 전하고자 한 이미지는 기대와 정열의 불 속에서 오래 익힌 것이었다. 그와 반대로 상대방은 습관적인 감동이나 시장에 가면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투적인 괴로움이나 판에 박힌 감상 정도로 상상하는 것이었다. 호의에서건 악의에서건 그 응답은 언제나 빗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침묵을 견딜 수 없게 된 사람들의 경우, 남들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쓰고, 그들도 역시 상투적인 방식으로, 단순한 이야기나 잡보, 이를테면 일간지 기사 같은 비슷한 말투로 이야기하고 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