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2026.01.30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P. 13
내가 심술을 부렸던 진짜 이유는, 울화통이 터질 것 같은 순간에도 마음속으로는 내가 심술을 부릴 만한 인간이 못 될뿐더러 양심을 품을 만한 인간조차도 될 수 없기에 결국 쓸데없이 참새들이나 놀라게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는 점을 매순간 창피하게 자각했기 때문이다.
P. 19
내 자신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다 보면 쓰라림이 마침내 어떤 치욕적으로 저주스러운 달콤함으로 바뀌고 결국에는 결정적이고 진지한 쾌감으로까지 바뀌었던 것이다.
이때의 쾌감은 자신의 굴욕감을 너무나도 분명히 의식하는 것, 바로 그것에서 나오는 쾌감이었다. 그 굴욕감이란 자신이 막다른 벽에 다다랐다는 점을, 추악하기는 하지만 달리 어떤 방도가 없다는 점을, 이미 다른 출구는 없고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설사 어떤 다른 존재로 변할 시간과 믿음이 남아 있다 할지라도 아마 자기 자신이 그런 변화를 원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설사 원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변할 수 있는 존재가 없을 것이므로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스스로 느끼기에 생기는 굴욕감이다.
P. 33
길이란 건 거의 항상 어디로든가 나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길이 어디로 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그런 길이 나 있도록 만드는 것, 즉 행실이 올바른 아이가 공학자와 같은 기술을 등한시한 끝에 모든 과학의 어머니인 나태함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파괴와 혼돈을 열정적으로 예찬하는 건 대체 무슨 심리일까?)
P. 65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궁전 대신에 닭장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만일 비가 오는 상황이라면 난 아마 비에 젖지 않기 위해 닭장 안으로 기어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비를 피하도록 해주었다는 고마움 때문에 닭장을 궁전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당신들은 이런 경우에는 닭장이나 대저택이나 똑같은 게 아니겠냐고 말하며 웃고 있다. 그래, 그 말도 맞다. 오직 비에 젖지 않으려는 목표만 가지고 살아야 한다면 닭장이나 대저택이나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P. 69
당신은 삶을 갈망하는 상태에서 뒤엉킨 논리로 삶의 문제들을 풀어보려 하고 있는 거요. 당신은 참으로 끈덕지고도 뻔뻔스럽게 엉뚱한 말들을 하지만, 그러면서도 겁은 참 많구려! 당신은 헛소리를 하면서 그것에 만족하고 있소. 뻔뻔스러운 말들을 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끊임없이 겁을 먹고 또 용서를 구하고 있소,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우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의 의견이 궁금해서 아양을 떨고 있소. 이를 갈고 있다고 우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를 웃기려고 농담을 하고 있소. 당신은 자신의 농담에 재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틀림없이 그것의 문학적 가치에 몹시 만족하고 있을 거요.
P. 100
내겐 영웅이 되든가, 아니면 쓰레기가 되든가 둘 중 하나만 존재했지 그 중간은 없었다. 바로 이것이 나를 파멸시켰다. 왜냐면 나는 쓰레기 속에 있으면서도 내가 다른 때는 영웅이라고, 영웅인 내가 지금은 쓰레기에 약간 몸을 담그고 있을 뿐이라고 스스로 위안했기 때문이다.
구구절절 공감되는 어록이 많았지만 2부로 갈수록 주인공의 행동에 고개를 갸우뚱함. 그저 관심을 받고 싶어서 주변을 배회하는가 하면.... 당구장에서 장교가 길을 막았다고 복수를 다짐하지만 괜한 어깨빵으로 갈무리하고 마는데.... 개인적으로 좀 심심한 설정이라고 느꼈다.
정말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이라면, 아니 최소한 실존주의를 표방하는 소설이라면 좀 더 강한 묘사가 설득력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강약약강이라는 인간의 추한 면을 직시하고 썼을테니 딱히 문제삼을 부분은 아닌 것 같기도 함 (만일 내가 주인공과 같은 상황이라면 아예 대놓고 이야기를 하거나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면 확실하게 주먹다짐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