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2020.12.01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다>
P. 37
인간의 심리만큼 알 수 없는 것도 많다. 주인의 마음이 지금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 들떠 있는 것인지 위안을 찾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철학자의 유서에서 일말의 위안을 찾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세상을 비웃고 있는 것인지, 세상 속에 섞여 들어가고 싶은 것인지 쓸데없는 일에 울화통을 터뜨리는 것인지 모든 사물에 초연한 것인지 가늠하지 못하겠다.
일기라고 하는 무용지물은 절대 쓰지 않는다.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자기의 마음을 어두운 방안에서 발휘할 필요가 있을지 몰라도, 우리 고양이들은 걷고 멈추고 앉고 눕는 것, 그리고 볼일을 보는 것까지 남김없이 일기가 되므로 굳이 그렇게 귀찮은 폼을 들여서 자기 진면목을 보존할 필요가 없다.
p. 92
인간이라는 동물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 억지로 입을 놀려서 우습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웃기도 하고, 재미도 없는 일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 말고는 재주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자기들은 수세미 꽃처럼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초연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들 또한 세상의 명예나 이익에 대해 무관심할 수도 없고 욕심도 있다. 경쟁하는 마음, 이기려는 마음은 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담소 중에도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한발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평소에 입이 아프게 매도하는 속되고 천한 성질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보일 정도니 고양이인 내 눈으로 보면 딱하기 그지없다.
p. 166
하늘과 땅을 제조하기 위해 그들 인류가 어느 정도의 노력을 들였는가 하면 털끝만큼도 하지 않은 것이다. 자기가 만들지 않은 것을 자기 소유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의 소유물이라고 정해도 상관없지만 그렇다고 다른 생물의 출입을 금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널따란 대지에 약삭빠르게 울타리를 치고 팻말을 세워서 누구누구의 소유지랍시고 나누는 행위는 마치 저 푸른 하늘에 줄을 둘러치고 이 부분은 내 하늘, 저 부분은 남의 하늘이라고 신고하는 꼴이다.
만약 토지를 이리저리 잘라 한 평에 얼마씩 소유권을 매매한다면 우리가 숨쉬는 공기를 한 척으로 된 정육면체로 나누어 잘라 팔아도 되지 않겠는가? 공기를 잘라 팔 수 없고 하늘을 가르는 것이 부당하다면 지면의 사유화도 불합리하지 않은가?
p. 209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다시없이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자기에게는 죄가 없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이니 천진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남들이 난처해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천진하게 굴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신사 숙녀는 이 집 하녀와 같은 계통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p. 235
물질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속물들은 오감의 자극 외에는 활동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남을 평가할 대도 눈에 보이는 형태 외에는 생각치 못하는 점이 문제다. 뭐든 짊어지고 다니면서 땀이라도 내지 않으면 일하는 것처럼 여기지 않는다.
예로부터 큰 뜻은 작은 귀에 들어가지 않고, 높은 경지는 보통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형체 이외의 활동을 보지 못하는 자에게 내 혼이 발하는 빛을 보라고 강요하는 것은 중에게 머리를 땋으라고 다그치는 것과 같고, 물고기에게 연설을 해 보라는 것과 같으며, 전철을 향해 탈선을 요구하는 것과 같고, 주인에게 사직을 권고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무리한 요구일 뿐이다.
p. 249
불완전하게 태어난 그들로서는 좀 무리가 될 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구태여 저렇게 잡다한 것을 피부에 얹고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양의 신세를 지기도 하고 번데기의 덕을 보기도 하고 밭에서 나는 솜까지 동원하는 것을 보면, 사치는 무능의 결과라고 단언해도 될 것 같다.
머리카락 같은 것은 자연히 나는 것이니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간편하고 당사자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쓸데없는 짓을 해서 여러 가지 잡다한 모양을 만들어 놓고는 잘난 체를 한다. 승려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언제 보아도 머리를 시퍼렇게 하고 있다. 더울 때는 그 위로 양산을 쓴다. 추우면 모자로 감싼다. 이래가지고서야 무엇을 위해 퍼렇게 내놓고 다니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p. 297
그저 먹고 자는 것을 천직처럼 생각하지 않았는가. 팔장 끼고 방바닥에 눌러 붙어서, 썩어 가는 엉덩이를 움직이지 않는 것이 양반의 명예라는 등 떠벌리고 흐뭇한 웃음을 지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p. 400
인간에 대한 연구는 모두 자기를 연구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천지도 그렇고, 산천도 그렇고, 일월도 그렇고, 모두가 자기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그 누구도 자기 말고는 달리 연구해야 할 대상을 찾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만약 인간이 자기 이외의 존재로 뛰쳐나갈 수가 있다면, 그렇게 뛰쳐나가자마자 자기는 없어져 버린다. 더구나 자기에 대한 연구는 자기 말고는 아무도 해 주는 사람이 없다. 아무리 해 주고 싶어도, 혹은 해 받고 싶어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호걸들은 모두 자기 힘으로 호걸이 되었다. 만약 남의 힘으로 자기를 이해할 수 있다면 남에게 자기 대신 쇠고기를 먹게 하여 질긴지 부드러운지 판단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침에 법어를 듣고, 저녁에 도를 물으며, 서재에 등불을 밝혀서 책을 손에 드는 것도 모두 이렇게 자기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한 방편적 도구에 불과하다. 남이 설교하는 법 속에, 타인이 말하는 도 속에, 혹은 산더미처럼 쌓인 책 속에 자기가 존재할 리 없다. 있다면 자기의 유령일 뿐이다.
p. 401
거울은 자만심을 양성하는 도구임과 동시에 자만심의 불을 끄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저 겉치레를 따지는 허영심만 가지고 이것을 대할 때는 이만큼 어리석음을 선동하는 도구도 없다.
p. 488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신을 아는 것이 평생 동안 풀어야 할 큰 과제다.
p. 489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을 위해 눈살을 찌푸리거나 눈시울을 붉히거나 탄식을 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경향이 아니다. 인간이 그렇게 정 많고 남을 위하는 동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난 세금의 일종으로 가끔씩 사회적인 교제를 위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할 뿐이다. 말하자면 사기성이 있는 표정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상당히 힘이 드는 재주이다. 이런 속임수에 능한 사람을 예술적 양심이 강한 사람이라 하며 이런 사람은 사회적으로 매우 소중히 여겨진다. 그러니까 남들에게 소중히 여겨지는 사람일수록 수상하다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