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2026.07.10
어떤 교육 모델이 이상적일까?
이것도 작년에 쓴 허접한 글이라 긁어옴
잘못된 교육 폐해를 직빵으로 쳐맞은 사람으로서 이상적인 모델을 생각해 봤다. (사실 다른 사회 문제와 마찬가지로 국가, 지자체 단위로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는 게 제일 고질적인 문제이긴 하다) 다른 사람들이 제시한 방법에 약간의 살을 덧댄 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이상론에 가깝기도 하다.
① 학습을 위한 워밍업, 기초 체력 관리는 필수
장시간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성인에게도 학생에게도 좋지 않다. 신체가 건강해야 두뇌 활동이 활발해지며 학습 효율이 증진되기 때문에, 육체 활동에도 일정 비중을 둬야 한다.
이상적인 신체 활동은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다. 단 체계화된 운동보다는 즐겁게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시키되, 선택권은 학생 개인에게 주어져야 한다. 축구, 피구와 같은 팀워크 스포츠도 좋고, 춤, 요가와 같은 실내 운동도 좋으니 하루 최소 한 시간 자유롭게 활동하는 시간을 국가 차원에서 의무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아무리 입시에 다급한 수험생이라도 기초 체력 유지와 건강이 중요한 법이다.
② 이론, 암기 학습 이전에 실습 / 실험을 먼저 경험하기
19세기 스위스 음악가 에밀 자크-달크로즈 (Émile Jaques-Dalcroze)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리듬 감각이 발달하지 않아서 연주 소리가 부자연스럽거나 화성을 배운 학생들이 멜로디를 작곡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가 새롭게 고안해 낸 교육법이 바로 교수법이다.
음악 이론을 암기하도록 지시하는 것보다는 음악을 들려주며 어떤 느낌이 드는지 질문하고 대화하며, 감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이처럼 `감각을 기르는 교육법’을 음악뿐만 아니라 국영수 등 다른 분야에도 적용시키면 좋을 것 같다. 이를테면 미술에 대한 화법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직접 그림을 그려보도록 하고, 운동 기구의 명칭을 외우는 것보다는 기구를 이용하며 올바른 자세를 익힌 뒤에 자연스럽게 원리를 파악하도록 하고, 경제 용어를 이론적으로 학습하는 것보다는 경기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도록 모의투자 등 실물 경제에 참여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부분이 수학이다. 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 공식만 달달 외워서 문제를 풀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가령 적분은 작게 나눈 면적(Δx)을 하나하나 더하고 쌓아서 전체 면적을 구하는 공식인데 이걸 인테그랄 에이, 비, 공식이라고 배우면 누구나 수포자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상 생활에서 먼저 사례를 접하고 그 다음에 공식을 보는 게 올바른 순서라고 생각한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 토크[ τ=r⋅F⋅sin(θ) ] 공식이 있다. 딱 봐도 골머리 아파 보인다. 그러니까 이 공식이 적용된 문제를 풀기 전에 손잡이부터 잡아보는 것이다. 손을 각각 손잡의 가운데와 가장자리에 놓고 열어본다. 그리고 본인이 주는 손의 힘과 가해지는 토크의 차이를 비교한다.
여기서 좀 더 응용하여, 문의 가로 길이를 x, 회전축으로부터 힘이 가해지는 거리를 y로 두고, 손잡이 가운데를 눌러서 열었을 때와 가장자리를 눌러서 열었을 때 차이를 비교해보며 지렛대의 원리를 도출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원리부터 똑바로 이해하는 것이 진짜 앎이다(라고 이 글을 쓰는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끼워 맞추기일 수도 있지만, 지렛대의 원리에서도 다양한 철학적 개념을 확장시킬 수 있다. 최소한의 힘으로 효율을 낼 수 있는 접점은? 이걸 국어 시간에 無爲而治 니 어쩌구 저쩌구 하면 당연히 침 흘리면서 자게 될 수밖에 없는 거다.
③ 전공과는 다른 과목을 수강하도록 하는 제도
반편짜리 지식을 예방하기 위한 보완책을 생각해보니 전공이랑 다른 과목을 의무적으로 듣도록 하는 것도 나름 방법인 듯 하다. 이를테면 전기전자공학과 학생들에게는 서양철학 과목을, 경영학과 학생들에게는 일반생물학을 (전필이 아닌) 교필 과목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다양한 분야를 총체적으로 공부할 수 있고 향후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폭넓은 시야를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④ '변증법적'인 동양식 토론 과목 개설
고등학생 시절 영어토론 동아리 OAK에서 활동했던 기억을 돌이켜보면 딱 전형적인 서양식 토론이었다. 한치의 모순도 허용되지 않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말해야 하고, 복잡한 문제를 개별적인 사실로 하나하나 떼어서 다루는 식이었다. 이런 경우 각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지만, 주제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벗어나 자칫 지엽적인 부분에 치우치기 쉽다.
토론이라는 게 꼭 논리 싸움이 될 필요는 없다. 답이 없는 문제들, 예컨대 외계인이 존재할까? 에 대한 주제를 두고, 어느 정도의 모순, 상충을 포함한 변증법적인 주장으로 사고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앞서 이론을 암기하기 전에 경험을 먼저 쌓는 것이 좋다고 써놨는데, 그 사이에 토론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암세포를 직접 배양하고, 한 사이클이 끝나면 암세포가 생기는 이유나 기존에 진행했던 실험 방식의 한계를 이야기하며 각자 보완책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각자 관점을 도입하여 살을 덧대어 보는 방식이다. 그냥 교수가 출제한 시험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보다 정말 재밌을 것 같다.
저서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에 수록된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질문을 예시로 따와봤다. 이 저서에 게재된 질문은 1988년부터 2002년까지 출제된 문제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예술이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현실이 수학적 법칙을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얼핏 보면 쓰잘데기 없어 보이는 질문이지만, 그 자체로 생각해보기에 참 흥미로운 문제제기 아닌가.
※ 주관식 문제의 평가 기준 - 교사 간 순환 구조식
주관식 문제에서 동시에 떠오르는 문제가 교사들의 채점 기준이라고 한다. 주관식 자체가 답이 없기 때문에 경계와 점수가 모호하게 책정될 수밖에 없어, 점수에 이의 제기를 하는 학생들이 늘어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서술형 문제의 공정한 채점 방법에 대해 국민적인 차원에서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르게 주관식 문제를 도입하는 것은 논쟁과 혼란만을 불러올 것이다.
이런 불분명함을 보완하기 위해 법적인 장치가 필요한데, 여러 교사들이 동일한 학생의 답안지를 번갈아가며 종합적으로 채점을 하며 코멘트를 다는 등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양보다는 질이라고, 상대적으로 감소한 학령 인구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기존 OMR 판독기를 이용하면 시간이 좀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차별없는 평가"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따른다. 교사들도 서로를 반면교사 삼아 의견을 주고받으며 보완할 수 있고, 나아가 창의적인 답변을 제시한 학생들로부터 새로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⑤ 개인 맞춤형 교육 제도
맞춤형 교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포괄적이지만, 내가 인용하고 싶은 건 교육학자 켄 로빈슨이 성공 사례로 든 영국의 `러닝 레코드법’ 방식이다. 자발적으로 흥미로운 분야의 직업적 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로, 학생들의 학습 수준, 흥미, 재능 등을 실질적으로 파악하고 문서로 기록해 단계별로 척도를 만들어 평가하는 방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표준화 시험의 대안으로 처음 인정받은 방침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독서를 즐기는 학생들은 이야기를 창작하거나, 영상 매체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일상을 담은 영상을 제작하거나, 음식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요리를 만드는 것이다. 한 학생이 요리를 한다면 다른 학생이 그 과정을 촬영하고, 다른 학생은 편집하고, 다른 학생은 레포터가 되어 설명하고, 다른 학생은 아이디어를 덧붙여 단편 영상 매체를 제작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은 브금을 넣고, 과학 실험을 좋아하는 학생은 식재료 효능을 분석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학생은 이를 기사, 신문으로 적어 다른 학급에 공지하는 등, 모든 학생들의 작품을 유기적으로 융합하여 하나의 소규모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국가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시킨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제도는 학습에 대한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집단에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학생들 스스로 학습을 주도하며 경과를 기록하고 서로간 참여를 통해 사회성도 배양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 비슷한 제도로 동아리나 재량 활동과 같은 프로그램이 있지만, 기존 재량 활동은 각 부서 당 제한된 인원으로 구성되며 반 강제 선택적이라는 면에서 합리적이지 못하다. 물론 내가 학창 시절 때 이야기다. 요즘에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다.
여하간 일리히의 법칙(수확체감의 법칙)을 생각하여, 교육의 '양'보다는 '질'에 신경을 써야할 때라는 걸 느낀다. 더 이상 학교에서 자기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채 졸업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비록 나는 잘못된 교육으로 큰 피해를 보았지만,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꼭 자기 개성과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고등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⑥ 인공지능 툴 사용 제한
스티브 잡스, 크리스 앤더슨은 아날로그 주의자다.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IT기기 사용을 자제하는 문화를 지키며 온라인 대신 종이 카탈로그를 뒤지는 것을 즐긴다. 트위터의 창업자 에번 윌리엄스 역시 집에 기기가 전혀 없으며, 서재에 책을 가득 꽂아놓고 수시로 읽는다고 한다.
요즘같이 인공지능 툴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시대에는 핵심을 빨리 파악하고, 복잡한 정보를 최대한 빨리 처리하여 적재적소에 응용하는 인재들이 절실하다.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지 못할 `진정한 의미로서의 인간’이 되려면 AI에 대한 무분별한 의존보다는 두뇌 회로를 독자적으로 이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저서 <생각하는 인문학> 에서는 실리콘밸리의 사립 학교 `그린 우드’ 를 언급하며 최첨단 기기가 하나도 없는, 한마디로 컴퓨터 발명 이전 형태의 교실을 소개한다. 책장에는 사전 전집과 나무로 만든 장난감, 인형, 찰흙, 바느질 도구 등이 가득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자기 내면의 힘을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을 할 시간에 다른 아이들과 놀고 대화하면서 타인들과 공감하고 조화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 베치 앤더슨(입학처장)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밖에 있는 컴퓨터를 다루기 전에 내 안의 컴퓨터(창조적 두뇌)를 다루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 아치 더글라스(교장)
“모두가 IT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힘이다. 이 능력은 절대로 기계가 키워줄 수 없다.” – 앤디 글라커 (학부모)
“디지털 기기가 전혀 없는 이 학교는 아이들의 내면에 있는 예술성을 키워줄 수 있다. 그것은 창조적 상상력으로 연결된다.” -크리스 브루어(학부모)
한편, 90년대 한국 가수 젝스키스의 <학원별곡>이라는 대중 가요의 가사는 참 찰지다.
소리가 나지 않는 전화처럼 난 아무 표현 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학교 종이 땡 하고 울리면서 우리들의 전쟁은 다시 시작된다
모두의 친구는 모두의 적 모두가 서로 모두 밟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이렇게 싸우다가 누가 살아남나 가엾게 뒤로 처진 자는 이젠 뭔가
왜 내가 알고 싶은 사실들을 학교에서 배울 수가 없나
내가 수학 시간 공부했던 방정식그게 어떤 도움이 되나
만일 영어 시험에서 백 점 맞는다고 아메리카 맨과 말이 통하나
우리 가르치는 선생님은 그렇게 하나
나는 모르겠다 알고 싶은 것이 많다
내게 만약 자식이 있다면 절대, 결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교육을 시키지 않을 것이다.
학교라는 곳도 그저 표면 지식을 주입받는 기관이 아닌,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는 곳’으로 탈바꿈되어야 한다. 배움이라는 건 단순히 학교/학원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인간이 살아있는 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계는 근간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 산재해 있다. 마음 같아서는 통째로 바꿔버리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공교육을 현실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다. 설카포 급의 고학력자도 아니고 교육 분야와는 거리가 먼 입장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이 교육계 전반을 개혁하려는 건 부끄러운 포부에 가깝기 때문에, 공개하기 부끄러워 개인 기록용 블로그에 남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