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2026.07.01
내가 경계선 인격장애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불문곡직하고 나의 제대로 된 첫 연애는 7개월 만에 종지부가 찍힌 것 같다. 서로 열렬하게 사랑했고 오래오래 잘 만나기로 약속했음에도 7년이 아닌 고작 7개월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결국 100% 내 과실이다. 화가 나는 것과 그 화를 표출하는 것도 그릇인데, 내 그릇이 너무 작았다. 열 살 짜리 애만도 못한 감정선이었다.
난 상대방이 기분 나쁘다고 말한 이유를 알았다. 내가 상대를 기다리는 시간이 낭비라고 표현하며 약속을 깨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같은 날 만났어도 제정신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날 음주와 불면증으로 날밤을 까는 바람에 정신이 반쯤 맛이 가 있었고 쏟아지는 업무 때문에 두뇌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였으니.
그래서 내가 왜 기분 나쁜지 물어봐야 하는 미친 소리를 했고, 이제 평일에 만나지 말자는 말은 결국 아예 만나지 말자는 말로 알아 쳐먹고 헤어지자는 말이지? 라고 반문한 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그가 헤어짐을 고하는 뜻인지 물었고 그는 그 말을 듣고 헤어지고 싶어졌다고 했다.
자신을 병신 호구 취급하고, 내 삶에서 본인이 부차적으로 달려있는 요소고, 본인이 없으면 앞으로 더 잘 살 것이며, 하다못해 내게 있어 본인 자신이 좆도 아니었다는 말까지, 온갖 비난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는 그의 모든 것을 내걸었지만 내 쪽에서 저따위 식으로 막말과 실수를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마음이 지쳐버린 탓이 크겠다.
그 말을 수차례 곱씹어보니 예전에 들었던 비난들과 맥락이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놀라울 정도로 같은 패턴이었다. 똑같은 비난을 수 차례 듣는 걸 보면 난 정말 9년 전 받았던 진단처럼 분노 조절 장애와 경계선 인격 장애가 맞고,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가 말한 껍데기란 단지 내 말과 행동 때문에 껍데기처럼 보이는 무언가였을 뿐, 나로서는 진심을 다해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것만은 진실이다. 그렇게 느끼도록 함부로 행동했던 내 자신에게 오로지 100%의 과실이 있다. 하여간 나라는 새끼. 누가 믿든 말든 내가 진심이었으니 그것으로 족해야 할까.
눈물이 난다. 하지만 눈물을 흘릴 힘도 없다. 그냥 무기력하게 앉아 머리와 마음이 가는 대로 타이핑을 쳐내려갈 뿐이며,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고, 상대가 앞으로 잘 지내기를 빌어주며, 이 모든 기억을 무덤에 집어넣고 자물쇠를 걸어잠근 채 없었던 일처럼 지내는 것이다. 함께 보냈던 추억도, 같이 지냈던 행복했던 순간들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 여름 밤의 꿈이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