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2026.06.18
이타주의는 고도로 정교화된 이기주의다
우리는 타인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이타주의라고 정의하고 그것을 선(善)의 영역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을 마치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당연한 진리로 가르친다. 하지만 겉으로 착하고 선하며 훌륭해 보이는 이타주의, 부처의 보시와 같은 마음이 정말 순수하게 타인을 위한 것인지는 뿌리부터가 의문이다.
사실 이는 나만의 의문이 아니다. 따지고보면 철학적으로 상당히 오래 반복되어 온 논쟁이다. 인간은 정말로 순수하게 타인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가, 아니면 모든 이타적 행동은 결국 자기 만족이나 이익으로 환원되는가?
난 후자, 즉 차라리 심리적 이기주의(Psychological Egoism)라는 개념이 사실이라는 쪽에 더 무게를 두겠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기업은 자신을 구성하는 주주와 창업자, 경영진 등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사익, 즉 자기 이익의 추구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행위는 기업의 자기실현 방식이다.
물론 기업이 자기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다고 해서 사회에 해악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는데다 고용 창출까지 하기 때문에 해악은커녕 사회 전체에도 편익을 제공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편익이 아닌 이윤을 얻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라는 사실이 명확하다. 그래서 기업들은 이 과정을 마케팅이나 브랜드 스토리텔링으로 고상하게 포장한다. 고객 만족, 환경과 동물 보호, 지속 가능한 발전, 이 모든 이로워 보이는 것들이 결국에는 장기적인 이윤을 위한 수단이고, 그렇게 전략을 짜야지만 브랜드 서사를 차별화하고 더 많은 선택과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 가난한 사람에게 후원,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러 희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사회적으로 고귀한 미담으로 회자된다. 여기서 한 가지 구분해야 할 점이 있다. "행위로 인해 내가 만족을 느낀다"와 "만족을 얻기 위해 그 행위를 했다"는 서로 다른 명제라는 점이다. 친구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기분이 좋아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기분이 좋아지려고 친구를 도울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제로의 수준이 아닐까.
이타주의는 공공의 이익, 종의 원활한 보존을 위한 사회적인 현상이기 이전에 일종의 생물학적 본능이다. 타인을 돕는 이유가 자기 만족, 즉 보상 회로의 편도체에서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이 도파민은 사랑에 빠질 때나 마약에 중독되었을 때 혹은 게임, 도박에서 이겼을 때에도 동일하게 분비된다. 결국에는 타인을 도움으로써 자기가 타인에게 유익한 존재라는 자아 실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냉정하게 말하면 이타주의는 결국 극한의 이기주의다.
아~주 정교하고 고도화된 형태의 이기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