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2026.08.07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나와 부친의 관계와 닮은 부분이 있다
예전부터 하던 생각 한 토막.
<영조실록>에는 영조가 어린 사도세자를 매우 아꼈다는 기록이 있다. 세자가 3살이었을 때 행동이 의연해서 앉혀 글을 쓰게 하고, 신하들에게 세자의 글을 보여주며 자랑하는 식의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다 4~5살 무렵부터 어린 세자를 저승전에 따로 지내게 했고, 그곳에서 경종이랑 선의왕후를 모시고 살던 궁인들이 그를 돌봤는데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경종을 모시던 궁인들이 영조 측 사람들에게 불손하게 굴었고, 그것 때문에 영조가 동궁을 멀리하게 되면서 사도세자와 서서히 멀어진 것이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그 무렵부터 영조가 세자를 질책하는 일이 늘어났다. 날씨가 좋지 않은 것을 세자의 부덕 때문이라고 탓하는 바람에 매일 날씨가 어떤지 걱정하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듣기 싫은 말을 들으면 물로 귀를 씻어내는 버릇이 있었던 영조가 세자의 대답을 들으면 귀를 씻어내며 푸대접을 하고 유독 가뭄이 심한 여름에는 이게 다 세자 때문이라며 쌍욕을 퍼붓고 갈궈댔다고도 한다.
세자는 영조로부터 어떤 질문을 받으면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우물쭈물대며 대답하지 못했고, 영조는 그것을 무능함이나 불성실함으로 받아들였고, 예상과 다른 답변을 하면 자신을 속인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질책하면서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어느 정도냐면 옷을 입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뭔가에 집중하다가도 아버지가 나타나면 구석으로 도망가서 벌벌 떨었다고 한다. 단순히 어려워한 정도가 아니라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한 것이다.
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의 마음은 일관되게 증오와 혐오로 점철되어 있었고, 그것은 좀처럼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심지어 죽음을 크게 슬퍼하지 않았다는데, 아무리 폭군이고 매정하더라도 자기 자식에게만큼은 끔찍할 정도의 애정을 주는 게 부모 된 마음 아닐까. 뒤주에 갇힌 아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는 대목도 도무지 부모 - 자식이라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프레임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내 부친의 엄격한 훈육 신념이 폭력으로 번져간 부분은 영조와 참 닮아있다고 느낀다. 어릴 적 부친과 좋았던 추억은 거의 없고, 어딘가로 여행을 가거나 놀러 다녀도 꼭 사소한 이유로 한 대씩 맞았던 기억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당시 부친에게 있어 나는 스트레스 풀기 딱 좋은 샌드백일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말대꾸를 하면 머리 위로 리모컨이 날아왔고 특히 팔뚝과 등짝을 많이 맞았다. 어떤 날에는 숙제를 찢어버릴 때도 있었다. 술에 취했을 때마다 화분, 액자, 유리컵 등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내던지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난 목청껏 소리를 지르면서 내가 빡쳤다는 사실을 어필했고, 부친은 그럴수록 더욱 강한 폭력으로 억누르려 해서 관계가 악화되었던 게 아닌가 한다.
언젠가 말대꾸를 했다가 앉은 자리에서 발로 뺨을 맞고 이빨이 빠졌던 기억도 난다. 그 돌려차기 사건 이후로 난 부친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고 그 상흔은 서른이 된 지금까지도 깊게 남아있다. 그래서 여전히 타인, 특히 이성에게 쌀쌀맞게 대하며 방어하는 데 익숙하고, 아직도 저들이 내 친부모가 아니라는 의심도 떨쳐내지 못했다. 그들의 사랑과 관심은 기분 나쁘고 꺼림직한 집착에 불과하다.
물론 나야 일반인이기 때문에 부친에게 기어오를 수 있었지만, 사도세자는 엄격하던 조선시대 사람이었고 아버지가 국왕에 본인은 왕세자였으니, 부모에게 대든다면 반항 수준이 아니라 군주에게 불충하는 행위로 인식되어 꿈도 못 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영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내 부친은 나름대로 사랑을 주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ㅡ 그것도 아니라면 좀 비참하니까)
6살 때인가 집에 돌아온 부친에게 선물을 받았는데, 배를 누를 때마다 알러뷰♬ 라고 익살스러운 목소리가 나오는 곰인형이었다. 난 그 인형의 목소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부친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정말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 알러뷰 소리를 들으면 마치 부친이 인형의 입을 빌려 내게 말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