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2026.08.02
Last Call 블로거를 통해 알게 된 점들
네이버 블로그 이웃 중에서 몇몇 독자들의 후원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노인이 있었다. 특이한 건 지리산에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연공원법 때문에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곳에서는 거주가 불가능하다는데 어떻게 황토방을 짓고 살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가 올리는 포스팅은 주로 불교와 깨달음, 영성에 관한 것들이었다. 초고대문명론과 외계인, 인도의 요가, 불교의 탄트라, 무속 신앙, 사주 명리, 대체 의학, 차원 상승, 채널링 등이 한데 섞인 그런 조잡한 사상 체계들이다.
글과는 별개로, 그는 내가 살면서 실제 만났던 사람들 중 위선자로서는 끝판왕이었다.
한마디로, 질낮은 이성과 어중간하게 발달한 영성이 결합된 인간이었다.
그의 위선을 깨닫게 된 건 그가 부처와 야차 이야기를 들먹이며 "소중한 것을 얻으려면 소중한 것을 내놓아라"라는 말을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절대불변의 진리에 대한 깊은 목마름과 호기심이 있었고, 그래서 구글링을 하다 그 블로그를 알게 되어 메일로 궁금한 것들을 가끔씩 물어보았다. 그러다 기회가 생겨서 직접 찾아가 불교의 역사와 사람들의 인식, 호흡 수행법, 뉴에이지 영성계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왔었다.
이후에도 종종 메일로 소통을 했고, 그의 조언으로 알바도 하나 시작했었다. 그리고 받은 월급 중에서 몇 십 만원 가량을 블로그에 적어둔 계좌로 송금했다. 따지고보면 어르신에 대한 기부의 마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고맙다는 말은커녕 네게 가장 소중한 것이 돈이냐며, 너는 가르침을 받을 자격이 없다며 맹렬하게 공격과 비난을 퍼부었던 게 아닌가?? 스승의 가르침과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말이 그가 당시 자주 써먹던 레퍼로리였다.
어안이 벙벙했다. 난 그때 석사 과정을 그만 둔 학생이었고, 땀흘려 번 코 묻은 돈이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인지 이해가 좀처럼 잘 가지 않았다. 태도가 예의가 없어서 화가 나셨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라고 했고...
그래서 이 사람이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건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불현듯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그가 의미하는 건 순결이었다.
가르침의 대가로 내가 몸을 바치기를 원했던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놓고 성적인 관계를 요구했다가는 남은 생을 감방에서 보낼지도 모르니 (또 내 부친의 직업 특성상 그런 짓을 했다간 본인이 쉽게 처벌 받을 걸 알고 있으니) 실제로 지리산에 찾아갔을 때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고 나중에 스스로 마음을 열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나더러 인디고 아이들이라는 말, 특별하고 개성있는 존재라는 말, 그런 온갖 칭찬과 사탕 발린 말들을 포함하여 그가 블로그에 올려놓았던 윤회 사상이나 카르마와 같은 오랜 불교적 주장들까지도 의구심이 들었다.
그의 말과 글 하나 하나가 자의식만 부풀리게 만드는 그런 교묘한 주둥이 놀음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끝에 정신나간 늙은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연락하지 말아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냅다 차단을 박았다.
진정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거나 날 정신적으로 도와줄 마음이 있었다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이원성의 해소, 의식의 조화, 깨달음 같은 불교와 이타주의 정신을 표방하면서 뒤로는 순결을 갖다 바치라고? 시이이이이~발, 보통 사기꾼보다 더 악질이다. 차라리 고액의 컨설팅 비용을 내놓으라 했다면 덜 혐오스러웠겠다.
노인네의 생사 여부야 이제 알 수 없고 궁금하지도 않다. 그러나 덕분에 아주 많은 진리를 깨닫긴 했다. 닝겐들이 싸구려처럼 써먹는 순수한 이타주의 따위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며, 결국 영성꾼들도 컨설팅과 강의를 팔아먹는 용역꾼들이나 다름없단 사실을.
그리고 팩트 검증이 안 된 개인 주장을 진리랍시고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하는 건 더욱 잘못된 일이다.
그가 주장한 바대로 인간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정신 세계가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말과 글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들까지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不立文字,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뭉뚱그린다면 그건 그냥 무식하거나 사고의 빈틈이 많아서 그런 것일 뿐이다.
명문대 문턱에도 못 간 인간이 '학사 학위는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부자가 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돈이 쓸모없다고 말하는 게 우스운 일인 것처럼, 아무런 검증도 없이 뉴에이지적 세계관을 고수하며 자신의 맹목적인 세계관을 타인에게 가르치려 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진정한 영성이란 과학 ㅡ 그 중에서도 물리학이 반박할 수 없을 정도의 정밀한 팩트에 근거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바보들의 망상에 불과하다.
영혼의 존재를 무작정 부정부터 하고 보는 극성 유물론자들도 또 다른 의미에서 바보들이지만, 아인슈타인이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라고 지적했던 것처럼 과학적 회의주의를 거치지 않은 영성은 어디까지나 반쪽짜리 진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