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2026.09.26
과학기술은 너무나도 당연한 삶의 뒷배경
우리 할머니 시절만 해도 돈 거래는 관계 형성의 일부였다. 누군가를 직접 알아야만 돈을 빌려줄 의향이 있고, 돈을 선뜻 빌려준다는 건 그만큼 사람을 믿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면수심으로 사기치는 놈들도 활개를 쳤지만) 적어도 돈 거래의 바탕에 있어서는 사람 대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이제 누군가를 직접 알고 지내지 않아도 그 사람의 거래 이력, 금융 정보, 신용 점수 같은 데이터가 신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은행에서도 고액 대출이 가능한 것이며, 거래라는 것이 점차 인간관계와 분리된 상호교환이 된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t5S1UF68UEE
같은 맥락에서, 판매자가 카드번호를 직접 기록하고, 서명을 받고, 전표를 보관했다가 나중에 직접 거래를 대조했었는데, 이 과정이 전산화되면서 지금의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내용의 영상이다. 영상처럼 카드를 보여주고 번호를 종이에 찍어서 서명을 남기는 식의 물리적 신용카드 거래는 본 적이 없어서 생경하다. 당시로 돌아가서 지금의 카드 단말기와 신용 카드를 보여주고, PG사를 소개한다면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까?
나도 평소에 단말기에 카드를 갖다 대면 결제가 되고, 앱에서 결제탭만 눌러도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간다고 느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누가 그런 일련의 과정을 매번 의식하겠는가. 카드를 단말기에 갖다댐 → 삑 → 결제 완료 이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할 겨를이나 있을까?
흥미로운 건, 이렇게 고도로 발전한 기술일수록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서 더 이상 인간에게 기술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도 그렇지만, 수도꼭지를 틀 때도 정수장으로부터 배수지, 수도관을 거쳐 우리 집으로 넘어온다는 생각 없이 그냥 물을 틀고 쓰면서 살지 않는가? 전기를 쓸 때도 발전소, 송전망을 떠올리지 않고 그냥 스위치를 켜고, 메시지를 보낼 때도 데이터가 어떤 서버와 네트워크를 거치는지 전혀 떠올리지 않는다. 그저 바쁜 일상 속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이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처럼, 마치 뒷배경에 불과한 것처럼 받아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