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2026.06.28
가치는 실력이 아닌 시장에서 나온다
어쩌다 보니 상속세, 증여세법을 공부하게 되었다. 미국 변호사가 써야 하는 칼럼이 내게 넘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세법 전문가가 아니고 직장에서의 메인 업무도 마케팅이었지, 세법이나 영주권 수속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나한테 일감을 떠넘기는 이유는 뭐 자명하다. 편하게 일하고 싶으니 그렇겠지. 근데 상식적으로 칼럼이라는 건 나같은 좆문가가 아닌 진짜 전문가가 쓰는 게 맞지 않을까?
전문가라는 게 뭔가. 그 분야에 대한 이론과 원리를 깊게 이해하고, 그것을 입증할 자격증이나 학위, 경력을 갖춘 사람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리스크도 본인의 이름을 걸고 짊어진다. 그래서 예전에 난 어떤 분야든지간에 전문가에 준하는 수준의 실력이 있으면 그 실력에 대한 수요 때문에 취업을 하든 사업을 하든 일이 자연스럽게 풀린다고 생각했다. 실력이 충분조건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 필요 조건에 가까운 것이다.
근데 요새 들어 생각이 바뀌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코딩 열풍이 불어서 개발자들의 몸값이 높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AI 엔지니어의 수요가 폭발하는 것처럼 시장은 희소성과 수요에 따라 가치가 매겨질 뿐이니, 대중적인 의미에서 가치있는 것은 곧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AI의 기하급수적인 발달로 인해 특정 기술이나 실력에 대한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젠슨황이 누가 뭘 많이 알고 얼마나 똑똑하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성이 중요한 요소라고 촌철살인을 날린 것처럼 지식의 보유량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러니 나같은 비전문가도 전문가의 수준에 버금가는 비전문가 사이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식이라면 굳이 비싼 연봉을 요구하는 전문 인력을 고용할 필요가 없다. 내가 경영인이었어도 당연히 저렴한 임금을 받고 AI툴을 잘 다루는 (한마디로 현재의 나와 같은) 인력을 고용해서 인건비 지출을 줄였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시장에서 수요가 많다고 다 절대적인, 본질적인, 내재적인 의미에서 가치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난 본질적으로 가치있는 일을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