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2026.04.01
난 언제부터 태호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인생에 있어 제일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사랑에 대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본능을 거슬러 자기 목숨을 내팽기치는 정신 나간 짓도 하는데, 누군가를 향해 사랑에 빠지는 건 심장 박동처럼 자신의 이성과 논리, 의지대로 풀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연애나 사랑 같은 건 그저 식상하고 고전적인 풍경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고작해야 예쁘게 포장된 성욕에 불과할 뿐이었다. 서로 애정어린 눈빛을 교환하는 연인들의 세계는 언제나 반듯하지만 그곳에 내가 비집고 설 틈은? 뭐 기회야 여러 번 있었지만 야속하게도 모두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차라리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연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그들을 보며 낄낄대는 편이 내게 더 잘 어울리는 일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태호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모든 것은 "무"에서 "유"로, "없음"에서 "있음"의 과정으로 명쾌하게 전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계기로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확언할 수 없다. 반대로 태호역시 어떻게 해서 나를 좋아하게 되었고 사랑에 빠져서 코뚜레가 뚫렸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도대체 나 같이 못나고 얼빵한 정신병자를?왜?좋아하는 걸까?어떻게?좋아할?수가?있을까?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정신없이 써내려가는 시점에서 확실한 건 나는 그를 좋아하고,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태호에게 처음으로 메시지를 보낸 건 <명상록> 때문이었다. 명상록은 스토아 철학의 화신인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쓴 글이었다.
"우주의 정신은 공동체적이다. 우리는 우주의 정신이 어떤 것들은 종속시키고, 어떤 것들은 대립하게 함으로써, 모든 것에 자신의 자리를 주었고, 우월한 존재들은 서로 화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였다"
"설령 네가 삼 천년, 아니 삼 만년을 살 수 있더라도, 너는 지나가는 삶을 살 뿐이다"
얼마나 멋진 어록인가? 비록 태호가 쓴 글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사진으로 기록해둔 행위 자체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그는 독서 쯤이야 안 해도 상관 없다는 말로 부담감을 덜어내려던 모양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독서에는 충분히 신비로운 힘이 있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될 때마다 고개를 쳐드는 호기심, 이 정도의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라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사람과 사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 분명 글을 사랑하는 사람은 멋진 사람일거야. 당시 나는 내 안의 호기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분별하지 못했다.
확실한 건 나는 그를 여전히 좋아하고,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