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2026.06.17
Fuck off you bastards
얼마 전에 입사했다 사라진 미국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임
(하도 웃겨서 기록을 안해둘 수가 없다)
하와이의 RC랑 줌 미팅이 있어서 세팅을 도와주는데, 랩탑 마이크가 안 되고 스피커도 맛이 간 상태임을 알아차렸다. 마이크는 이어폰으로 대체했고 스피커도 내부 설정에서 어찌저찌 해결을 했는데 (그것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혼자 얼레벌레 급하게 해결함) 충전기가 없어진 게 문제였다.
줌 미팅이 시작된지 5분이 지나서도 충전기를 찾지 못했고, 랩탑은 배터리가 없으니 휴대폰을 가져와서 앱을 다운받아 다시 로그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회의는 내가 참가할 자리도 아니었는데 내가 휴대폰으로 화면에 비추는 바람에 어찌저지 같이 미팅을 하게 되었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도중에 대표님이 영어를 잘못 알아듣고(?) 동문서답을 하기도 했다. 결국 회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 즉 충전기를 찾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의 화살은 내게 돌아왔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충전기를 찾다가 랩탑을 마지막으로 쓴 사람을 수소문해서 물어보니 신입 변호사였다. 그래서 충전기를 봤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자신이 집에서 가져온 휴대폰 충전기로 랩탑을 썼다고 대답했다
엥 그래요????
그럼 충전기는 어디 갔을까???
•ˋ _ ˊ•
한참 충전기를 찾는데 그 변호사의 자리 밑에 해당 충전기가 꽂혀져 있는 걸 발견했다. 내가 그걸 발견하고 물어보니 마치 내가 자기 물건을 훔쳐가는 냥 기분 나쁘고 황당하다는 듯 자신의 핸드폰 충전기라고 대답하며 쓰고 싶으면 쓰라고, 자기는 충전기 많다고 마치 생색을 내듯 대하는데...
그 변호사 휴대폰 기종이 아이폰인데 밑에 꽂혀있는 충전기가 LG사의 것이었다는 게 좀 이상했다. 부장님도 의심스러워서 회사 노트북 충전기의 시리얼 넘버를 찾아보니 변호사 아래 자리에 꽂혀있는 것과 동일했다고 말했으며, 내가 기억하기로도 똑같은 모양새였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다음날 출근했는데 먼저 와 있길래 인사를 건넸는데.... 내 인사를 가볍게 씹어드심.
다른 직원들의 말을 들어보니 대표나 이사님, 다른 미국 변호사님 등 임원급에게는 깍듯하게 대하지만 수속 직원들의 인사는 무시하는 강약약강 태도를 보인다고 했다. 기분이 상했나 싶어 사과 멘트까지 구구절절 생각해둔 내가 멍청이었다 (그 멍청함에 좀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월요일에 해당 변호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과 협업하는 이사님이 월요일 오프라서 자신도 월요일 오프인 걸로 알고 임의대로 쉰 것이었다. 다음날 구두 협의가 되지 않았는데 쉰 것에 대해 대표님이 물어보니 왜 신입 사원에게 제대로 안내하지 않고 몰아가냐며, 회사 차원에서 공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카톡을, 그것도 자신보다 직급이 아래인 대리에게 장문으로 보냈다. 나원 참...
제일 웃겼던 건 유학원 사건이었다. 공동 특별 세미나를 함께 진행할 유학원을 컨택해야 하는데, 문제의 변호사가 AI로 가상의 유학원 사이트를 몇 개 만들어서 엑셀로 뽑아온 정신나간 짓을 한 것이었다. 그러니 연락처가 있을 수가 없지 ㅋㅋ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창조 경제가 아닐까?
그냥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거짓말이 몸에 베어있는, 그렇다고 해서 치밀한 것도 아닌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쏴대는 그런 문제투성이의 인간이었다. (쳐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부류다)
이런 씨발 일만 해도 피곤한 마당에 저런 또라이 때문에 억울하게 욕 먹었던 걸 생각하니, 절망감과 동시에 도파민과 예술적 영감이 팡팡 터져나오는 걸 느꼈고, 한편으로는 저런 얼간이가 좋은 성적을 받아 미국 변호사 타이틀을 얻을 수도 있구나, 하고 개탄하기도 했다. 참으로 구역질 나는 현실이다.
뭐 하지만, 사람을 너무 미워해서는 안 된다. 무슨 얼어죽을 공자왈 맹자왈 예수님 부처왈 같이 낡아빠진 지침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미워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증오하면 결핍감에 시달리고, 건강을 해치게 된다. 그러니까 그냥 그 순간에만 비아냥대고 끝내면 되지, 두고두고 미워할 일은 따지고보면 별로 없다.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생각이지만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을,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그 사람의 훌륭한 덕목과 장점만을 생각하는 게 낫다. 내 이기심이 상대를 이롭게 한다면 그것은 상호 호혜적인 이기심이니, 곧 이타주의니 이기주의나 이타주의나 한 면인 셈^^
해당 미국 변호사에게 훌륭한 덕목따위 찾아볼 순 없었지만, 그냥 살면서 만난 또라이 에피소드 중 하나로 기억에 간직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