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2026.06.08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절망>
태호가 읽길래 빌려달라고 해서 완독했다. 회사 일 때문에 머리에 과부하가 걸려서 며칠 텍스트를 멀리했더니 완독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게르만은 어느날 노숙자 펠릭스를 마주치는데, 보자마자 자신과 도플갱어 수준으로 똑같이 생겼다고 확신한다. 마침 초콜릿 공장 사업도 녹록치 않자, 그는 잔머리를 굴려서 범죄를 계획한다. 팰릭스를 자기처럼 꾸미고, 신분을 세탁하고, 펠릭스를 살해한 뒤 시신이 자기로 오인되게 만들어 보험금을 챙기는 것이다.
이 모든 행위는 그에게 있어 들통날 가능성이 없는 완전 범죄였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소설로 기록한다. 그의 소설 속에도 "나는 예술가다" "나는 천재다" "나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라는 문장이 난무한다. 그리고 아내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을 경멸하듯 비웃는다.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대목들이다.
태호는 소설의 제목인 <절망>을 보고 인간의 비관이 극에 달했을 때 느끼는 절망감을 묘사한 작품인 줄 알았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나는 어렴풋이 범죄 소설이라는 사실 정도만 어디서 주워듣고 알고 있었다. '절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도 부정적이라 결말 역시 어떻게 끝날지 대충 예측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내가 예상했던 방향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나의 경우 "나는 역량있는 작가다"라는 첫 구절부터가 나르시시즘이 심한 인물이구나 싶었고, 그러한 성향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돌을 맞고, 이해받지 못하고, 절망과 상처 속에서 몸부리침치고, 그것이 범죄의 형태로 드러나는 이야기로 예상했다.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들은 으레 타인으로부터 건방지고 오만하다, 꼴불견이다 라는 평가를 받기 마련이니.
그러니까, 내가 예측한 건 뭐랄까. 일종의 심리적, 실존적인 절망이었다. 비슷한 소설을 예로 들자면 <이방인>이나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느껴지는 종류의 절망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읽고보니 나보코프의 절망은 순전히 자기 과신 때문이었다. 게르만이 맞닥뜨린 절망이란 지금껏 자신이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음을 느끼고 현실 자각 타임을 겪는, 한마디로 '현실에 대한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천재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만, 허영심과 자기 기만에 빠져 있었다는 점에서 자기 객관화가 부족했던 인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 넘어갈 것이라고 믿는 그의 사고방식은 그가 스스로 생각하는 지능 수준과도 매칭되지 않는다.
오만에서 시작했으면 끝까지 오만함을 유지했으면 좋았건만, 그 끝이 절망이었다니. 나름 통쾌하지만 씁쓸하기도 함.
이 책으로부터 얻은 교훈이 있다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만할 때 붕괴하기 쉽다는 점이다. 인간이라고 불리는 생명체는 언제나 오만하고, 또 그만큼 연약하고 멍청하다. 그러니 자기 주제도 모르고 깝치면 결말이 좋지 못할 것이다.
지나친 겸손도 꼴깝이지만, 인간이라면 무릇 자기 능력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