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2026.07.23
내 성실함을 악용하지 말아줄래?
자리에 앉아 수다에 열중하는 직장 동료들을 넌지시 쳐다본다. 그들이 말을 붙이면 난 그냥 미소를 지으며 그저 그렇게,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뻔해빠진 대답을 내뱉는다. 겉과 속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복잡한 생각 때문이다.
이 회사에 입사한지 반 년이 안 됐는데 체감하기로 몇 년은 다닌 것 같다. 여긴 자율 출근제고 출퇴근 시간을 30분 단위로 나눠서 근무할 수 있다. 불합리한 건 1분만 늦어도 30분 초과 근무가 의무라는 점이다. 7시 45분에 출근하면 16시 45분 퇴근인데 얼마 전에는 7시 47분에 도착하는 바람에 얄짤없이 30분 초과 근무를 하게 되었다. 하하 씨발 ㅎㅎ
요즘 억누르던 분노와 짜증과 무기력함 그리고 자살 충동이 부쩍 심해졌다. 그래서 투약도 늘렸고 무슨 일이든 꼭 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복싱도 매일이 아니라 주 1~2회로 줄였고 단테 산책도 강박적으로 시키지 않고 내가 힘들 때는 공놀이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본업 이상의 업무를 주고, 주말 출근을 당연하게 여기고, 권위적인 태도로 대하려는 악질 어르신들의 영향이 정신병의 악화에 한몫 한 것 같다.
예의도 상식도 갖춘 지식인들을 악질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들이 기독교의 사상을 빌미로 내가 가진 자율성을 억압하려 들기 때문이다. 초과 근무와 주말 출근은 기본이고, 전문가가 해야 하는 일을 좆문가인 나에게 떠넘긴 채 자신들은 근무 시간에 웹툰을 보거나 고양이 간식이나 사러 나가는가 하면 내가 가진 고질적인 불면증에 대해서도 믿음의 문제로 치부하며 예배와 기도를 끊임없이 권한다(강요한다)는 점이다.
흔히 듣는 말 :
나 젊을 때는 주 6일 근무였어^^
나는 잠을 5시간만 자고 일해도 담날이면 멀쩡해, 다 그분 덕분이지^^
그건 믿음의 문제야^^
안과장 해외 부동산 총괄도 맡아서 나중에 사업 하나 차려^^
복서가 무슨 감기에 걸려^^
복서가 무슨 일이 많다고 울어, 다 배워두면 도움이 되는거야^^
언제 와서 바이올린 연주 한 번 해^^
이번에 부산 내려갈 사람 안과장밖에 없어^^
사람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해^^
인간의 본질은 일이야^^
이런 말을 듣고 있자면 단순히 질려버리는 게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과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다른 일은 감사한 마음으로 배운다 쳐도 내 불면증의 원인은 내가 가장 잘 알고, 하느님을 믿을지 믿지 않을지에 대한 권리도 나한테 있다고 씨발, 마음 같아서는 멱살을 잡고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화가 난다고 한대씩 패버리며 난폭하게 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조용히 생각에 갇혀 있을 뿐이다.
일이 곧 인간의 본질일까?
나 말고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던졌던 의문이다.
내가 느끼기엔 생각하기 나름인 주제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노동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한나 아렌트는 노동만이 아니라 서로 얽혀있는 정치적 삶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보았으며 기타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질따위 정해져 있지 않고 매 순간 스스로 만들어간다고 보았다.
칼뱅교에서는 직업을 소명(Calling, Beruf), 즉 하나님이 각자에게 맡기신 천명으로 보았다. 중세 가톨릭에서는 수도사나 성직자의 삶을 일반 직업보다 거룩하게 여겼고, 그렇지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의 직업과 신앙을 하나로 융합시켜 열정적으로 일에 임했다. 지금처럼 아 일하기 싫어 마인드가 아니라, 무릇 인간이 해야 할 신성한 의무로 여겼던 것이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말이 연상된다)
칼뱅의 사상이 악용되는 방식은 우리 회사 사람들이 내게 보여주는 방식처럼 아주 간단하다. 어떤 단체가 개인에게 "네가 하는 일도 하나님의 소명이다" "네가 불행한 것은 일에 대한 네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 라며 일방적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면 그건 조언이 아니라 종교의 언어를 빌린 가스라이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의 탈을 쓴 꼰대 조직의) 마인드가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점이다. 사람 한 명을 정신병자로 만들 정도로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