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2026.07.24
SF영화의 세계관이 아쉬운 점
이라고 써놓고 갑자기 엔트로피 법칙이 생각나서 생각을 정리해봄
밤에 잠이 안 와서 <테넷>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꺼버리고 말았다. 등장인물의 행동과 개연성이 쓸데없이 복잡해서였다.
설정의 논리성 따위 개나주고 재미삼아 보면 장땡이지만 진지 좀 빨아보자면, 시간 여행과 엔트로피를 구분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예전에는 이런 류의 영화를 사고 실험으로 여기고 재밌게 보았는데, 최근들어 좀 억지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굳이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과학적 세계관을 밀어붙여야만 했을까 싶다.
<과거>와 <과거와 동일한 상태>는 다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과거로의 돌아감은 현재 2026년에서 1926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엔트로피 역행은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복사판에서의 과거, 즉 과거처럼 보이는 무언가에 접속하는 것이다.
대부분 SF 영화에서는 물리적인 과거로 돌아간다. 가령 <Edge of tomorrow>에서 톰 크루즈가 전투에서 죽고 눈을 떴더니 시간이 하루 전으로 돌아가 있는 것처럼 우주의 시간축을 통째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하루가 처음이지만 톰 크루즈만 똑같은 하루를 반복 경험하는 것이다 (끔찍하다)
그러니까 난 그 장면을 보고 과거와 똑같은 상태가 만들어졌다면 그것이 내가 살았던 바로 그 과거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궁금증이 생기는 거다.
열역학의 관점에서 엔트로피 = 무질서도로 정의된다. 예컨대 엔트로피는 컵이 깨졌을 때 증가하고, 갑자기 깨진 컵이 저절로 원상복귀되면 감소한다. 만약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의 운동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면 진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깨진 컵도 다시 조립되고 이미 불타버린 종이도, 변성되어버린 단백질도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엔트로피는 상태를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령 컵이 파란색, 빨간색일 때 엔트로피는 같음) 엔트로피가 감소한다고 반드시 과거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 조작 능력 기술로 인간이 우주 전체를 1926년의 시절과 원자 하나까지 똑같은 상태로 재현했다 치자, 문제는 그 세계가 1926년과 똑같아 보이지만 당시 살았던 인간들이 경험했던 1926년이라는 과거 자체가 아니라 2026년에 새롭게 만들어진 1926년의 복제본이라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진짜 과거로 돌아간 게 아니라 과거와 똑같은 상태를 가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셈이다.
죽은 개의 DNA를 채취하여 복제한 뒤 이름까지 똑같이 붙여도 오리지널 개와 100% 일치하는 개체가 아닌 것처럼 과거와 같은 우주를 만들어도 그건 새로운 우주일 뿐 시간을 되돌린 게 아닐 것이다. 과거로 이동하는 것과 과거와 동일한 상태를 다시 만드는 건 다른 영역이다.
그리고 과거 - 현재 -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도 인간의 의식 속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