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2026.07.20
이제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되자
"우리 모두는 예술가, 천재, 사상가, 연구자, 발전자 등이 이룩한 불멸의 업적을 기생충처럼 먹고 산다. 이들이야말로 인류의 진정한 지도자다. 이들은 세계 역사의 엔진이며, 우리는 그것의 분배자다." - 아들레프 아들러 <삶의 의미>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당장 이 글을 올리기 위한 스마트폰은 수천 명의 과학자와 공학자의 축적된 연구 결과고, 인터넷은 수십 년간의 기초 과학과 군사 연구의 산물이다 (나는 도메인 비용을 지불하고 일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전기, 항생제, 백신, 자동차, 반도체, AI까지 모두 극소수의 창조적인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결과다.
물론 지식인 중에서는 학문이라는 이름을 빙자한 말장난을 즐기고, 타인의 고뇌를 주워다 자기 고민거리로 삼으면서 비웃는 자들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 극소수 지식인들의 축적된 성과를 소비만 하며 살아가는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내 삶 역시 소비자에 편중되어 왔다. 루저처럼 시스템 속에 숨어서 누군가가 쓴 글과 소설, 누군가가 만든 게임, 영화, 음악에 빠져서 온갖 희노애락을 느껴왔으니 이제는 정말 주체가 되서 능력이 닿는 한, 내 고유의 것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고 내 안에 있는 어떤 자가 강렬하게 외치는 것 같다.
객관적인 지표로 따져보면 능력이라곤 벼룩의 똥만큼도 없는 인간이지만, 차라리 괴기한 정신 상태나 깡따구를 활용해서라도 원하던 바를 달성하고 죽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개나 돼지처럼 먹고 자고 싸며 교미 따위나 하며 생명을 부지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
뭐, 그것 나름대로 능동적이라면 능동적인 삶이라 볼 수 있겠지만... 최소한 내 의지와 뜻대로 (인생의 종지부까지도 스스로 찍음으로써) 삶을 한 편의 희곡처럼 완결짓고 싶은 것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던 건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아니 최소한 나와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도 가끔씩 잊고 지냈던 것들 ㅡ 이를테면 생명, 우주, 사랑, 죽음, 시간, 자연의 냄새와 같은 근원적인 대상들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세상과 사람을 바꾸기 위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내 뿌리깊은 감각을 그 누구도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그들로부터 공감을 사고 싶었을 뿐이다.
이 80억 인구 중에 오로지 나 혼자만 이 특유의 감각을 느낀다면 이 세상은 마치 관객 없는 무대나 다름없을 것이고 그런 상상을 하노라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아프고 공허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감히 적어보건대, 천박한 것들을 아무런 자각없이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라면, 연민보다는 경멸감이 더 크다. 스포츠, 연애,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것을 인생의 활력소로 삼기에는 나라는 인간이 덜 대중적이다. 그들이 내게 공감하지 못한 것처럼 나도 그들에게 공감하지 못한다.
그저 유행하는 대로 이것저것 휩쓸려가는 사람들도 진심으로 멍청해 보이고, 너무나도 작은 권력의 먹이에 취해 오만해진 사람을 마주할 때면 인간종에 대한 혐오감이 극한까지 치달으면서 그에 비례하여 외로움과 소외감이 깊어지는 것이다...
꼭 경제 권력, 정치 권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타인에 비해 조금이라도 우월한 고지에 서는 크고작은 경험들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런 건 내게 있어 다 본질과는 관계없다.
어찌됐든 난 이 세상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다. 누구나 유일한 예술가로서의 가치가 있듯 나도 내 삶을 살겠다. 온갖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감정 때문에 자아를 잃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