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2026.05.26
태호의 집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기록해봄
(중략)
성욕이라는 건 변덕스러운 계륵에 불과했다. 어떤 날에 느꼈던 쾌락이 또 다른 날에는 치욕으로 변모하고, 그 해결되지 못한 치욕은 곧 짜증스러움으로 바뀌고 만다. 눈에 반짝이 칠하기, 입술 바르기, 포르노에서 들려오는 멍청한 신음 소리, 피임약, 콘돔. 이제 더 이상 나와 무관한 것들이 아니다.
그는 내 옷을 벗겨내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마치 젖을 먹는 것처럼 젖꼭지를 빨아먹었다. 음, 분명 건장한 성인 남성인데 갓 태어난 신생아에게 젖을 물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너무 좋아, 너무 짜릿해! 오늘이 마지막이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난 그를 격렬하게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몸이 동강 나는 듯 날카로운 통증이 있는데 몇 분 지나니 점차 이상한 감각이 왔다갔다 하였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다못해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를 올려다보니 이미 의식이 저 너머로 가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짧게 호흡했다.
...
욕실을 나왔다. 태호는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속옷 더미들을 내게 내밀었다.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처량해 보이는 팬티와 속바지 그리고 브래지어들. 이루 말할 수 없는 더러움과 한심함. 인간의 우스꽝스러운 속내. 너무나도 보편적이라서 더욱이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동정심을 줄 수밖에 없는 것들. 이따위 것들이 고작 내가 감추고 싶었던 은밀한 비밀이었단 말인가? 나는 조용히 스스로를 비웃었다.
생각해보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순결함인가? 이미 인식은 더럽혀진 상태가 아니던가? 그러니 내가 물리적으로 순결을 잃더라도 인격은 결코 재구조화될 수는 없다. `다른 인간'이 될 리가 없다는 말이다. 몇 시간만 지나면 같은 복장을 하고 나설테지만 그 속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른 인간이 되어 있으리라는 사실을 그 누가 눈치챌 수 있으며, 그걸 눈치챈다 한들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