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2026.05.28
이성과 감정, 이상과 현실을 메우는 삶의 기교가 필요하다.
난 아주 어릴 적부터 내가 정서적으로 결함이 있는 병신이란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일견 다를 바가 없지만, 속으로 파고들수록 나는 남들과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나 다름없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글의 소재로 삼아야 직성이 풀리고, 비록 사사로운 일들이라도 의식하지 않고 흘려넘기는 게 잘 안 된다. 그냥 적당히 알고 넘어가고, 적당히 단순화하고, 알 수 없는 문제는 덮고 훌훌 털어 버리는 게 잘 안 된단 말이다.
뭣이 됐든간에, 괴로움과 불안함의 영원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서 나오는 듯 하다. 답이 보일 듯 말듯한 알쏭달쏭한 영역, 그것이 나를 너무나도 괴롭게 만든다. 이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고, 인류는 어떤 역사를 밟아왔고, 이 세계의 문화와 종교와 철학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인간의 본성은 어떠한지, 조직과 기업과 국가는 어떻게 운영되어야 이상적인지, 그리고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까지, 모든 것들이 나를 즐겁게 하지만 그만큼 괴롭게도 만드는 것 같다. 그것들에 관해서는 대부분이 궤변 내지는 공허한 수다에 불과해서, 매번 책과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권태와 실증 그리고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의 답답함에 갇혀 옴싹달싹 못한다.
정말로, 실존의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분하고 협소하게 산다. 그들이 겪는 고통이란 지극히 사소한 것,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불과하다. 그들이 겪는 스트레스 역시 이 거대한 지구라는 생태계와 인류의 까마득한 역사를 떠올리자면 너무나도 작은 문제다.
그들은 수 백년 전, 수 천년 전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퍼뜨려놓은 거대 담론에 전적으로 자신의 도덕적, 윤리적 개념들을 내맡기고 있다. 그들이 생각해낸 독자적인 방법론은 단지 짧은 인생을 좀 더 보람차게 보내기 위해 시도하는 일종의 자기 속임수, 기만에 불과하며 이따금씩 신에게 잘못을 빌고 회개하는 방법으로 양심을 달랠 뿐이다. 법과 정의 역시 실존적으로 바라보자면 그저 민주주의의 제도 하에서 다수결로 정해진 의견에 불과할 뿐 그 자체로 진실은 아니다. 사회가 감히 개개인을 심판할 권리는 어떤 경우에도 존재할 수 없다. 좀 더 거국적인 관점에서 일상과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실로 유감이다.
따지고보면 이러한 모든 것들이 무릇 인간에게 내재된 정신적 본능이지만 나에게는 어찌된 일인지 그 많은 것들을 찰나의 순간에 인식하는 정도가 심해서 얼빵한 바보가 되어버린다는 게 문제다. 그리하여 이따위 스트레스 해소 식으로 똥글이나 쓰고 있으니 결함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이러한 결함을 눈치챈 주변인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말이다.
여하간 어떤 궁금증에 과몰입해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는 감정의 격렬한 요동침에 찢어질 듯 괴로울지 몰라도 결국 잠잠하게 잊혀지기 때문이다. 나중에 가서 보면 내가 뭣 때문에 그토록 화가 났는지 또는 무기력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순간이 올텐데, 천금만금 귀중한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지. 인간이 하루하루 소모하는 무의미한 감정의 파편들이야말로 경계해야 하는 끔찍한 함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