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2026.06.03
마틴 스코세이지 <Life Lessons>단편 보고 든 생각 - 예술은 이데아가 아니다
흔히 예술가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삶을 포기한 대신 특정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광기의 천재, 자유로운 반항아, 고독한 사색가처럼 말이다. 현대에 와서는 남들과 차별화된 개성을 보이는 것, 보헤미안 힙스터 같은 이미지로 통용되는 것 같지만 대체로 "예술가"라고 하면 남들이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구석이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Life Lessons>이라는 단편에서는 닉 놀티가 광기어린 모습으로 작품을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벽에다 그림을 그리는데 음악 볼륨을 올려놓고, 몸을 크게 흔들고, 페인트를 여기저기 튀겨대는 모습이 압권이다. 마치 정신적 고통을 연료삼아 그림을 그리면서 해소하듯..
닉 놀티가 내 눈에는 예술가라기보다는 예술이라고 불리는 자기만의 개념에 사로잡힌 사람 같았다. 실제로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반복되는 과정을 생략하고 폭발하는 순간만 보고 있자니 마치 종교적인 체험을 하는 인물 내지는 어떤 초월적인 차원에 닿으려고 시도하는 정신나간 인물처럼 느껴진 것이다.
하여, 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술은 과연 이데아일까, 아닐까?
내 생각에는, 아니다.
어떤 영화의 교훈을 논리로 분석하는 순간부터 이미 그것은 예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된다. 매 장면마다 의미를 낱낱이 파고들어야 이해가 된다면 영화가 아니라 어설프게 철학서 흉내를 낸 영상에 가까운 것이다.
영화든 소설이든 관객과 독자로 하여금 삶의 본질을 환기키시는 작용이 필요하다. 아무리 훌륭한 인생을 살아도 `나'라는 개인의 가능성은 제한되어 있지만, 작품 속 세계는 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 작품 속 세계를 통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본다. 스스로가 원하는 이상적인 삶을 그려볼 수 있고, 영감을 받을 수 있고, 타인의 삶을 간접 체험하며 그들을 헤아릴 수 있다. 또 문장 몇 개를 조합하는 행위에서 창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고,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이상향을 품는 행위에서도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상상에 그친다면 예술이 아니라 망상이다. 예술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야 한다. 활자든 이미지든 영상이든, 혹은 소리의 배열이든 그것이 외부로 표현되어야 비로소 그 의미와 실체를 갖기 때문이다.
따지고보면 거창한 매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종이에 글을 쓸 필요는 없고, 화폭에 물감을 덧칠할 필요도 없다. 추운 겨울에 따끈한 호빵을 손에 쥐는 순간, 땅거미가 질 무렵 꽃 한 송이를 바라보는 순간, 서로의 눈동자를 보고 미소 짓는 순간, 이 모든 행동에 이미 예술은 스며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 역시 예술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늘날처럼 직장인이라는 직업이 보편화된 시대에 굳이 비유하자면 월급에 대한 욕망보다는 일에 대한 열정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예술가야"라며 눈살 찌푸리는 행동을 하는 것보다는 묵묵히 삶을 예술로 빚어내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예술은 인간의 외부가 아닌 내면에 존재한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예술이 아닌, 삶을 다시 이해하고 회복시키는 예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