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2026.10.04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며칠 전 어딘가에서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라는 노래를 들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종종 동요처럼 틀어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사실 내가 좋아하던 노래는 아니다. 가사의 다른 부분들은 듣기에 나쁘지 않지만, 얼굴을 찌푸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자신이 힘들기 때문이 아니라, 모두가 힘들어서라는 말에 약간의 잔혹함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였다. 그러니까 나는 존나 울적하고 슬퍼서 눈물이 광대까지 차오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 인형마냥 웃으라는, 한마디로 감정 노동을 하라는 메시지를 어린 아이들에게 혼입시킨다는 것이다. 자아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렇게까지 생각하진 못했고, 막연하게 좀 끔찍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웃어라, 넌 웃을 때가 제일 예뻐, 제발 인상 좀 쓰지 말라는 조언을 자주 한다. 당장 거울을 보니, 무뚝뚝하게 굳어있는 표정이 비춰진다. 내가 찡그리고 있을 때 다른 사람도 염려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해서도 아니고, 실제로 웃었을 때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몰라서 인상을 쓰는 게 아니라 평소의 생각과 감정이 드러난 것에 불과한데, 저들은 마치 내가 그것을 모르고 비관에 젖어있는 냥 조언을 쏟아놓는다. 속마음 같아서는 분노의 자아가 꿈틀거리며 약동하지만, 그냥 억누르며 니들이나 잘하세요 라고 쏘아 붙이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어차피 내가 인식하는 대상은 그 어떤 것이라도 언젠가는 모멸과 혐오를 면치 못한다. 그 누구의 제안과 조언도 내게는 쉽게 흡수되지 않는다. 그리고 선의의 조언도 한 두번이지, 반복될수록 내 입장에서는 "니가 인상 쓰고 있으니까 우리도 짜증나잖아, 그러니까 우리를 위해서라도 억지로 웃어"라는 일방적인 요구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마음이 울적한 순간에도 웃을까? 정말 기쁘고 행복하지 않다면 그 미소는 쓴웃음, 헛웃음에 불과할 뿐이며 애써 쓴웃음을 짓는 이들 중에는 현실을 흐리멍텅하게 인지하며 근거없는 장빗빛 미래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릴없이 떠도는 탑골 공원의 양반들이 어쩌다 한 번씩 감상에 젖어 주절거리는 헛소리랑 본질적으로 다를바가 없다.
인간이 철학적으로 생각할수록, 똑같은 것을 보아도 그 속까지 보고 진심으로 고뇌할수록 정신이 병들고 건강도 해친다. 반면 부모나 친구, 연인, 직장과 같은 사회의 안전한 비호 속에 살아가는 철부지들일수록 험하고 탁한 세상을 살아가기가 수월해지는 법이다. 웃음의 진정성 여부를 떠나서, 남들이 웃을 때 영문도 모른 채 따라 웃기만 해도 마음의 긴장이 조금 풀릴 것이다. 그러니까 당장 기분이 구려도 일단은 미소를 짓고 보는 게 그냥저냥 생활하기에 적합한 방법론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세상이 진정 공평하다면.... 삶과 정신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아픔을 겪어본 이들만이 더욱 큰 행복과 기쁨을 거머쥘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 피상적인 쾌락은 진짜 행복과 기쁨이 아니다. 슬프면 남 눈치 안 보고 얼굴을 찌푸릴 자유가 있어야 한다.
각자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자. 남 눈칫밥이나 보며 감정 노동을 하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生의 시간이 너무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