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2026.10.03
너와의 첫만남이 벌써 일년 전이야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블로그 이웃으로 알고 지내던 사람과 처음으로 만났다.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에 대해 깊이 탐구하면 지금까지 겉으로는 잘 보지 못했던 측면들이 포착된다. 언제부터 그러한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래 전부터 어렴풋이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지금까지 5~6번 가량의 연애 경험이 있는데, 문제는 연애 기간이 하루, 나흘, 일주일, 길어야 세 달을 넘기지 못했다. 어이없게도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것들에 대한 환상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애초에 영원한 사랑 따위는 존재하지 않음에도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수줍은 소녀처럼 온갖 고상한 꿈과 기대를 걸고 있었고 ㅡ 그 기대를 깨뜨리는 상대는 영문도 모른 채 내 경멸의 시선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당시 쓰다 만 글이 있어서 복붙해서 기록해본다.
1.
네이버 블로그 이웃 foggyyy님이랑 이래저래 디엠을 주고받다가 밥이나 한 끼 먹자는 말을 세 번째 들었다. 뭐, 사실 만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상대나 나나 으레 하는 싸구려 연극이 분명하니까. 흉한 몰골 때문에 차마 그를 만나고 싶지 않은 입장이기도 했지만, 가볍게 밥이나 먹고 그저 그런 대화나 나누는 심심풀이 만남이 서로에게 유익한 일일까. 난 그런 식의 만남에 걸레짝처럼 닳아버렸다. 애석한 일이다.
2.
글을 기깔나게 쓰는 사람, 텍스트가 아닌 실물로 만나보면 어떨까 싶어, 적극적으로 만남을 추진했고, 그렇게 당일 충동적으로 만남이 결정되었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 그에게 선택권을 넘겼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삼겹살이었다. 그런데 맙소사... 예술과 문학과 글을 사랑하는 인간이 얼굴도 신상도 모르는 인간과의 첫 만남에서 소주에 삼겹살을 제안하다니... 이건 뭐... 나랑 한 살 차이에 커다란 눈을 가진 인물로 알고 있는데, 알고보면 뱃살나온 꼴초에 못생긴 영포티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인간의 고독을 탐구하는 섬세한 사람이라는 건 내 어리석은 오감의 착각이었다. 역시 인생이란 붕어 없는 붕어빵, 감자 없는 감자탕, 앙꼬 없는 찐빵 꼴이다. 기대를 걸었던 내가 뷩~신이지.
3.
지금 내 앞에 태평하게 앉아 있는 저 인간이 foggyyy, 내가 꽤 감명깊게 읽었던 문장을 쓴 사람이라니, 그 사실 자체가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우리는 (매우 뻔하지만) 서로에 대해 대강 말한 다음 화제를 돌려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면증의 포로 신세라는 점 말고 나와 그를 묶는 공통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와 접점을 찾기 위해 내멋대로 그를 궁리해봤다.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내 얄팍함과 가벼움 때문이었다.
4.
그런데 뭐랄까, 그에게 있어 쾌활한 것이라고는 말투와 목소리일 뿐이라는 것을 머지않아 눈치챘다. 타인에게 좀처럼 전달할 수 없는 불안감을 어렴풋이 보았던 것 같다. 말로 할 수 없는 존재와 고독과, 그 고독에서 나오는 소리없는 절규랄까. 텍스트로 접한 인물이어서인지, 무력과 권태를 느낀 자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면적인 노력마저 보이는 듯 하였다. 그를 멋지게 만드는 것도 무력과 권태고, 그를 괴롭게 만드는 것도 무력과 권태다. 이 불가사의한 속성! 너무나도 치명적이다.
5.
문득 글을 통해 보았던 바와 다른 깊은 동류 의식이 들었다. 공통어를 사용하지 않는 먼나라 제3세계 국가에서 한국인을 만난 것과 비슷한 수준의 동질감이었다. 아 물론 착각일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점이 아닐까. 굳이 차이를 굳이 모색하자면 나는 애초에 남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그것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해받고 싶다는 충동 자체도 좀 덜 느끼고 때로는 거기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다는 점이다. 왜냐면 나 자신과 타인 사이에는 얼마간의 다리가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것에는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법이다.
6.
사진으로 다시 본 그는 담담한 무표정이었다. 모든 걸 꿰뚫어버릴 듯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데, 그것은 마치 나를 같은 종족으로 여겨주겠다는 준엄한 신념이 담겨 있는 듯 하였다. 그와 동시에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파괴될 듯한 연약함, 그 반대로 지뢰처럼 폭발할 듯한 억누름, 그리고 좀 뜬금없지만 어떤 종류의 갸날픈 여성스러움이 느껴지는 건 뭐 때문일까. 만일 그가 죽음의 길을 택한다면, 아무래도 어떤 충동적인 슬픔 때문이 아닌, 종잡을 수 없는 무기력함에 잠식당해서일 것이다.
7.
그렇다, 나는 동료를 만난 것이다. 회사에서의 동료가 아닌, 삶에서의 동료 말이다. 알 수 없는 동질감 때문에 나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고, 귀를 닫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슬픈 건, 내가 인간의 실체를 분명하게 깨닫고 아무나 깊고 진중하게 상대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미 온갖 불만과 고뇌를 품에 떠안고 있는데 그것은 이미 부패가 시작되었으며 어리석게도 난 아직도 그것을 꺼내놓지 못했다. 속이 계속 곪아가고 있다.